“(한국거래소가) 심사하기도 벅찰만큼 상장 대기 중인 업체들이 상당히 많다. 정부가 육성하는 주요 산업에 대해선 절차 간소화 등으로 병목현상을 하루빨리 해소해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 투자심리 위축으로 자금줄이 꽉 막힌 벤처업계가 정부의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주문했다. 기술특례상장제도 개선과 벤처활성화 3법 등 검토 중인 사안들을 하루빨리 시장에 풀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들의 숨통을 틔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5일 한국거래소와 벤처기업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은 모두 8개사다. 2018년 15개사였던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 기업은 2020년 17개사로 늘었지만 2021년 9개사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지난해에도 감소세를 이어갔다.
반면 비(非)바이오 기업은 2018~2020년 한 자릿수를 유지하다가 2021년 22개사, 2022년 20개사로 바이오 기업의 기술특례 상장 수를 크게 앞질렀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혁신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지원하는 제도다. 통상 일반 기업이 상장을 할 때 재무적 요건 등을 충족해야 하는 것과 달리 기술특례상장은 외부 기관을 통해 성장성이 입증되면 영업실적이나 재무실적 같은 수익지표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상장기회를 주는 제도다. 2005년 도입된 뒤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은 모두 180곳을 넘는다.
기술특례제도는 주로 바이오 기업의 상장 통로로 활용됐다. 그러나 이렇게 상장한 일부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부실 논란이 일면서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제도 평가항목을 늘리는 등 문턱을 높였다. 질적요건 중 해당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기술력을 중점적으로 들여다 본다. 원천기술 보유여부와 기술이전, 임상여부 등 의약품 상용화 가능성 등이 포함된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 벤처기업이 모인 현안 간담회 자리에선 이와 관련한 토로가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만든 기술평가체계 표준화는 사실상 바이오 기업을 저격한 한 게 아니냐는 의견과 기준 세분화가 곧 기준 강화라는 불만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선 일단 심사기관 단일화와 절차 간소화, 특례 대상 확대 등 기술특례의 전반적인 요건부터 손을 봐야 한다고 보고 있다. 코스닥 기술특례에 나서는 기업들은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2곳으로부터 각 A, BBB 등급 이상의 평가 결과를 받아야 예비심사를 청구를 할 수 있다. 간담회 현장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사실 심사까지 가는 것조차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라고 전했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중기부 등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보완 방안을 마련 중이다. 복수의 기술평가를 받는 데에 수개월이 걸리는 시간적 부담이 큰 만큼, 기술평가를 하나만 받을 수 있게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견기업 자회사도 특례상장 대상에 포함하는 안도 들여다 보고 있다. 상장에 탈락한 기업들에 미승인 사유를 설명해 재도전을 지원하는 방안도 구체화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같은 방안을 검토한 뒤 이달 말 제도에 변화를 줄 예정이지만 업계에선 우려도 적지 않다. 상장을 준비 중인 한 벤처기업 대표는 “모태펀드나 정부 지원 정책자금이 쪼그라들면서 어려움이 크다”며 “투자는 적기에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추진력은 환영하지만 중요한 건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검토 방안을 빠른 시일 안에 발표하고, 하위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벤처기업협회는 전날 정부가 벤처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일반지주회사의 CVC 외부출자 요건 완화 △일반지주회사의 창업기획자보유 허용 추진 △민간 벤처 모펀드 세제혜택을 통한 1호 펀드 추진 등을 두고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과 후속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