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삶의 기반 흔드는 중대 범행…피해자 기망”
법원이 ‘무자본 갭투자’ 방식 등으로 전세사기를 벌인 일당에게 잇따라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서민과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한 중대 범행인 만큼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서수정 판사는 전날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66)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2017년 6월~2018년 12월 임차인 43명에게 84억 원의 임대차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세대 빌라왕’으로도 불리는 그는 무자본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 방식으로 서울 강서구, 의정부, 인천 일대에서만 주택 479채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 판사는 “전세사기 범행은 서민과 사회초년생의 사실상 전 재산을 대상으로 한 범행으로 죄질이 나쁘다”며 “일부 피해자가 전세 보증보험으로 피해액을 반환받았으나 이는 피해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넘겨진 것일 뿐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달 20일 서울 구로ㆍ관악 일대에서 전세보증금 38억 원을 가로챈 일당도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부동산 실소유주와 중개보조인인 이들은 담보 신탁으로 부동산 소유권이 없는데도 임차인을 속여 계약을 맺었다. 이후 보증금을 밑천으로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등 전형적인 전세사기 수법을 활용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채희인 판사는 부동산 실소유주 송모(68) 씨에게 사기 등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중개보조인 박모(35) 씨에게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채 판사 역시 “전세사기는 서민층과 사회초년생들인 피해자의 삶의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매우 중대한 범행으로,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기망했다”며 “피해자들은 여전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전국 오피스텔과 빌라 3000여채를 소유하면서 전세사기를 저지른 일명 ‘빌라의 신’ 일당에겐 검찰 구형보다 높은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단독 장두봉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최모(43) 씨에게 징역 8년을, 공범 권모(51) 씨와 박모(47) 씨에겐 각각 징역 6년과 5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최 씨에게 징역 7년, 권 씨와 박 씨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들은 임대차 보증금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이른바 ‘깡통주택’을 사들이며 임차인들의 보증금 70억 원가량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장 판사는 “이 사건 범행은 사회초년생들의 삶의 기반을 흔드는 매우 중한 범행이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도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피해금액에 따라 양형은 달라지겠지만, 경제범죄인데도 형량이 8~9년이면 중형에 속한다”며 “처벌을 더욱 강화하는 기조로 가야한다. 추후 같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 사전 경고의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생 되기 전에 부모로부터 독립해나가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등기부 확인 등 간단한 방식으로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이 교육 과정에 담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