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로만 접하던 ‘소아 응급실 뺑뺑이’를 직접 겪었습니다.
1일 오전 아이 두피에 넓은 부종이 생겼습니다. 일주일 전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급하게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습니다. 나름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란 간판을 내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응급실에선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두부외상 환자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당시 응급실엔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응급실에선 CT 검사는 가능하지만 판독은 이틀 뒤 가능하니 대전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해당 병원에서 추천한 다른 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 병원에선 신경외과 전문의가 수술 중이니 4~5시간을 기다리거나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또 차를 돌려 40분 거리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두부외상 환자를 차에 태우고 총 2시간을 넘게 달렸습니다. 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응급실에 대기 중인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응은 처음 갔었던 병원과 달랐습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당직의가 CT 검사로 두개골 골절을 확인한 뒤, 신경외과 전문의를 호출했습니다. 응급실에 온 신경외과 전문의는 뇌출혈(경막외출혈)을 확인한 후 교수에게 전화로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이후 입원진료 대신 외래진료를 권하며 예약 절차를 안내했습니다.
4일 외래진료에서 이상소견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담당 교수는 다음 진료일까지 집에서 아이를 돌보되, 이상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내원하라고 했습니다. 병원을 나오며 CT 영상이 담긴 CD를 받았습니다.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집 근처 병원에 내원할 목적이었습니다. 5일 아이 후두부가 돌출돼 CD를 챙겨 인근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응급진료를 거부했던 그 병원입니다. 이번에도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최초 진료받았던 병원으로 가란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인근 의원(소아청소년과)에서 단순히 임파선이 부은 것이니 안심하란 답을 들었습니다.
6일 밤 수유 후 구토와 비전형적 팔다리 움직임이 발생해 119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긴급출동한 구급대는 우리 가족에 두 번이나 퇴짜를 놨던 병원 응급실에 수용 가능성을 문의했습니다. 역시나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동안 쌓인 울분이 터졌습니다. 구급대원에게 ‘무슨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소아 환자를 안 받느냐’고 묻자 구급대원은 ‘같은 소아 환자라도 외상 환자는 병원에서 다르게 판단하는 면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론 아이가 진정되고 다른 이상증상을 보이지 않아 구급대를 돌려보냈지만, 분이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현재 다니는 병원은 집에서 자차로 편도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또 아이가 아프면 10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을 두고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하겠죠.
사실 제가 거주하는 세종시는 지방 도시 중 의료 인프라가 굉장히 잘 갖춰진 곳입니다. 지역 내에 대학병원이 있고, 인근 대전시와 청주시에도 대학병원이 네 곳이나 있습니다. 대학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은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아픈 아이를 데리고 2시간 넘게 응급실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세종시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도시들은 어떨까요. 제때 진료나 받을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소아 전문 병·의원이 부족한데, 종합병원마저 소아 환자를 안 받는다면 부모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정부는 3월 발생한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응급환자 수용곤란 고지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재개했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정기적인 논의를 통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시간이겠죠. 수용곤란 고지 관리체계 공백이 길어질수록,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할 우려도 높아질 테니까요. 합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공백기를 메울 임시방편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