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층 결집위해 내편·네편 갈라
국민 깨어있어야 민주주의 지켜
정치를 이분법적 논리로 접근하는 포퓰리즘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포퓰리즘이 번성해온 곳은 1930년대부터 포퓰리스트 정치의 영향을 받아온 중남미지만, 지난 10여 년간 서구 주요국에서도 포퓰리스트 정당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이른바 ‘정치 선진국’으로 여겨져 왔던 국가에서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잡거나 선거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이념적 성향이나 정책 방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포퓰리스트는 기존 정치제도와 기성 정치세력을 공격하고, 국민을 ‘선량한 우리’와 ‘부도덕한 그들’로 나누는 이분법적 담론을 펼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를 ‘우리 편’만을 위한 행위로 규정하는 것도 같다. 이러한 정치관을 공유하는 포퓰리스트 세력은 ‘선량한 우리 편’의 뜻을 받드는 데서 권위를 얻고, 지지 세력의 뜻은 ‘부도덕한’ 반대 세력의 권리를 희생해서라도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스트 정치관은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와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먼저, 국민주권의 원칙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요약되는 대중민주주의가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차별 없는 권리 보장과 권력분립으로 요약되는 자유헌법주의다. 포퓰리스트 정치관은 이 중 대중민주주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국민주권의 원칙과 다수결의 원칙에만 집착하는 포퓰리스트 세력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자신들만이 국민의 의지를 대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으니 자신들만이 절대적인 선이며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수결의 횡포’다. 이런 폐해는 우리 국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정치관을 가진 포퓰리스트의 성장은 각국의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형적인 전략은 ‘우리 편’과 ‘남의 편’ 간의 끊임없는 긴장을 조장하고 계속해서 기존 정치제도와 기성 정치세력을 공격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우리 편’의 범위에 들어와 있다고 간주하는 지지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등 극우적 수사를 서슴지 않았다. 여러 차례 입증되지 않은 증거를 내세우며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공격하기도 했다. 사법부는 보우소나루의 이러한 행태에 제동을 걸었지만, 보우소나루는 논리가 아닌 원색적인 비난으로 맞섰다.
권력 강화를 위한 전형적인 전략은 잦은 국민투표다. 정기적인 선거를 기다리지 않고 국민투표를 통해 ‘우리 편’의 지지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국민투표 승리는 자신만이 국민의 의지를 대표할 수 있다는 포퓰리스트 구호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임기 첫해부터 전임 대통령이 시작한 신공항 건설의 중단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2021년에는 8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수사·기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작년 4월에는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까지 밀어붙였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강화된 행정부 권력을 토대로 자신의 지지층에 복지 혜택을 집중시켰다. 이는 지지층을 더욱 결집했고, 차베스는 이를 바탕으로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장악했다. 반대 세력은 주요 기관의 개입으로 무력화되었다.
포퓰리스트가 마지막으로 노리는 것은 개헌을 통한 임기 연장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니카라과에서 포퓰리스트가 개헌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피와 땀으로 탄생한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데 십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적 포퓰리즘 확산을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