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국 포위망’ 발맞춰…“중국 반발 불가피”
수세 몰린 중국…“단·중기 첨단 반도체 제조 절망적”
일본, 중국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악영향 우려
일본 경제산업성은 무역 관련 법률 시행령 개정에 따라 이날부터 한국과 미국, 대만 등 42개 국가와 지역 이외에 반도체 노광·세정 장비 등 23개 품목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개별 허가 절차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그동안에는 별도의 허가 절차가 사실상 필요하지 않았다. 42개 국가·지역에 대해서는 절차가 간소화한다.
23개 품목에는 반도체 회로의 미세가공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관련 제조 장비, 불필요한 박막을 제거해 반도체 구조 패턴을 만드는 ‘식각(에칭)’ 장비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장비는 회로선 폭 10~14㎚(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필수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조처에 대해 “특정 국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며, 군사 목적의 용도 변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미국 주도의 반도체 통제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10월 군사전용을 우려해 슈퍼컴퓨터,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와 특정 제조장치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더해 일본과 네덜란드에도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에 이어 네덜란드도 9월 1일부터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일부 생산 설비를 선적할 때 의무적으로 정부의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일본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 역시 어려워진다. 수출 관리에 정통한 일본 국제문제연구소의 다카야마 요시야키 연구원은 이번 조처에 대해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것이 거의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은 반도체 제조 장비 부문에서 일본산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국제무역센터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중국 전체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액의 약 30%를 차지했다.
닛케이는 이번 수출 규제 강화 조처로 일본 기업이 받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이 규제 강화에 대비해 첨단장비 수출을 제한했던 데다가, 중국에서 구형 반도체 장비 수요가 견실하기 때문이다. 첨단 제품은 수출하기 어렵더라도 대중국 반도체 장비 비즈니스는 여전히 확대된다는 관측이다. 닛케이는 “중국은 미국의 규제 강화로 인해 반도체 제조설비를 첨단에서 구형 반도체로 전환했다”며 “일본산 제조 장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으며, 규제 강화 이후에도 수출에 대한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제는 중국의 맞불 조치다. 닛케이는 이번 수출 규제 강화로 인해 중국의 반발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이미 5월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 제재에 나선 데 이어, 다음 달부터는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 원료인 희귀금속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질화갈륨을 사용한 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이 있어 중국의 광물 통제 조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추가 보복에 나선다면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