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플레이션’ 미국서 난리인데…한국에도 ‘팁 문화’ 생기나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3-07-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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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국내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에서 ‘감사 팁’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카카오T는 이달 19일부터 ‘감사 팁’ 시범 서비스를 도입했는데요. 승객이 운행을 마친 뒤 기사에 대한 별점 평가를 할 때 5점 만점을 줄 경우 1000원, 1500원, 2000원 중 선택해서 팁을 추가 결제할 수 있게 한 겁니다. 일반 호출이 아닌 카카오블랙, 모범택시, 벤티, 카카오블루 등에만 기사 팁 정책이 적용됩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기사들이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한 뒤 팁으로 보답받는 경험이 축적되면 운행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고, 이는 곧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승객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감사 팁은 카드 수수료를 제외하고 전액 기사에게 전달되죠.

아이엠(i.M)과 타다 등 다른 택시 플랫폼도 이 팁 정책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이용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택시 기사들이 승객에게 불친절한 언행을 삼가고, 안전 운행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서비스에 대해 팁을 주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불만이 더 크죠. 특히 ‘요금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은데요. 결국 팁이 택시 요금에 더해지면 요금 인상과 같은 효과를 불러온다는 겁니다.

이에 앞서 온라인상에서는 팁 문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미 한 차례 오가기도 했습니다. 11일 한 누리꾼은 ‘한국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외국 문화’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요. 공개된 사진에는 ‘팁 박스’라고 적힌 유리병에 현금이 가득 찬 모습이 담겼습니다. ‘1인 1잔 주문 부탁드린다’는 공지 글로 해당 공간은 카페임을 알 수 있죠. 이 글을 게재한 누리꾼은 “원래 팁이 직원들 시급을 법적으로 최저임금보다 적게 줘도 되는 것 때문에 있는 걸로 아는데 한국에서는 왜 팁을 달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습니다. 비슷한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선의로 팁을 내는 건데 문제가 있냐’는 반박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카카오T까지 감사 팁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일각에서는 팁 문화가 한국에도 점차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팁을 적게 줬다가 몸싸움까지 벌어진 사례가 부지기수인 미국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왔는데요. 그런데 팁 문화가 정착된 미국에서도 최근 팁 문화와 관련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서 남북전쟁 이후 확산한 팁 문화…부족한 임금 충당 목적

당초 팁 문화는 미국이 아닌 16~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됐습니다. 귀족이 하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관습이었죠. 유럽 상류층의 문화였던 팁은 이후 미국으로 넘어왔고, 특히 남북전쟁 이후 널리 확산했습니다.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돼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이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을 받을 수 있게 한 겁니다. 즉 부족한 임금을 충당하기 위한 수단으로 팁이 활용된 거죠. 남북전쟁이 끝난 뒤 유럽을 여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유럽의 귀족 문화를 따라 하는 게 유행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팁 문화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매년 최저임금 협상이 진행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 이래 인상된 적이 없습니다. 각 주(州)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고, 연방 기준보다 높은 기준이 실적용되기 때문이죠. 미국은 중앙정부가 정한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중 더 높은 것을 적용하게 돼 있습니다.

현재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한화 약 9600원)입니다. 노동자의 나이나 거주지·학력 등에 따라 고용주가 지급해야 하는 법적 최저 시간급을 변경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팁을 받는 근로자의 연방 최저임금(Tipped Minimum Wage)은 시간당 2.13달러(한화 약 2800원)에 불과합니다. 팁을 받지 않는 노동자와 받는 노동자의 임금이 현저히 차이가 나는 건데요. 팁을 받는 노동자는 고용주가 줄 임금의 상당 부분을 손님들의 팁으로 채우는 셈입니다.

이는 ‘팁 크레딧’ 제도 영향입니다.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을 처음 규정한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FLSA)을 1966년에 개정하면서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요. 한 달에 30달러 이상의 팁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전액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받는 팁을 ‘팁 크레딧’으로 반영해 최저임금에서 팁을 제외한 만큼만 지급하면 되는 거죠. 다만 팁을 합친 금액이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면 차액을 보전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소득 비율이 낮으니 ‘팁은 소비자의 의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이에 팁을 적게 주거나 주지 않았다가 직원과 고객 간 언쟁이 높아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사업주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꼴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출처=유튜브 채널 ‘올리버쌤’)
키오스크에도 팁 내라고?…무섭게 확대되는 팁 적용 범위

통상 사람이 제공하는 음식 서비스라면 음식 가격의 15~20% 정도의 팁을 주곤 했지만, 팁 금액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20% 이상이 보편적인 관례로 굳어졌죠. 심지어 고객이 직접 누르고 계산하는 방식의 키오스크 결제에서도 팁을 요구하는 경우가 숱하게 발견됩니다.

21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올리버쌤은 ‘한국인 여러분,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미국에서 팁 내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14일 게재했는데요. 그는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팁이 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식사를 한 후 직원이 테이블에 계산서를 가져오고 요즘은 18%, 20%, 25% 정도의 팁을 낸다. 일종의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최근 서비스가 없는 곳에서도 팁을 달라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직접 미국의 한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을 찾아 키오스크로 1.69달러짜리 베이글을 주문했습니다. 결제 전 키오스크에는 팁을 내겠냐는 화면이 나왔는데요. 최소 금액은 1달러였습니다. 올리버쌤은 “직원이 서비스를 해주는 부분이 전혀 없는데도 여기서도 팁을 요구하나. 2달러 베이글 사는데 팁이 최소 1달러라니”라고 놀라면서도 “물론 노 팁(No tip) 버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 베이글에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을지 불안해서 억지로 팁을 내게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외에도 올리버쌤은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 키오스크로 고객이 직접 결제할 수 있는 세차장을 방문했는데요. 두 곳의 직원들은 모두 팁을 바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올리버쌤은 “스타벅스 직원들은 확실히 식당 서버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시간당 최저시급 15달러, 한국 돈으로 거의 2만 원”이라며 “제가 팁은 서비스라고 했잖나. 그런데 이미 충분히 시급을 받고 있고, 아직 제가 서비스라는 것을 받기도 전인데 카드기를 내민다. 이게 무슨 서비스에 대한 팁인가. 저에게 카드기를 내밀어 주신 것에 대한 노동비?”라며 황당해했죠.

팁을 남기라고 요구하는 기업 수는 증가 추세입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직원 관리 소프트웨어 업체인 홈베이스 조사 결과 중소기업 517개 중 16%가 고객들에게 결제 시 팁을 남기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이는 2019년 6.2%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입니다.

소비자들이 내는 팁 금액 자체도 늘어났습니다. 급여 정보 제공업체인 거스토가 30만 개의 중소기업을 분석한 결과 레스토랑을 제외한 서비스 부문 직원들이 시간당 받는 팁은 2019년 평균 1.04달러에서 올해 6월 기준 1.35달러로 약 30% 늘었는데요. 서비스 산업 근로자가 5월 받은 임금은 시간당 16.64달러, 팁은 4.23달러로 팁이 전체 임금의 5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 중 상당 부분이 팁에 의존하고 있는 모양샙니다.

▲한 카페에 ‘팁 박스’가 놓여 있다. (출처=트위터 캡처)
‘팁플레이션’ 논란에 “팁 문화 사라져야 한다” 주장도

팁 문화와 관련한 논쟁은 미국에서도 자주 오갔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불이 붙었습니다. 팁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팁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는데요. 침체기를 겪은 많은 기업이 직원 임금을 올리는 대신 팁에 의존하면서 ‘서비스에 대한 감사 표시’보다는 ‘임금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됐기 때문입니다.

세헤라자데 레만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WSJ을 통해 “미국 경제가 이전보다 팁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며 “이는 점점 더 통제 불능 상태가 돼 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직원 급여 인상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실제로 다수의 미국 기업은 고용시장 호황 속에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직원을 유지하기 위해 급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영 압박이 커지자 고객들에게 팁을 요구함으로써 임금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설명이죠. 급여 인상으로 기업 부담이 커지면 제품·서비스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것도 기업들이 주장하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팁 문화는 결국 노동자들의 급여 체계를 불안정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나단 모두치 뉴욕대 교수는 “팁을 주는 것은 기업에 더 많은 유연성을 준다”며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재정적 위험을 떠맡도록 하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사루 자야라만 UC버클리대학 식품노동센터 소장도 “고용주들은 임금 인상 대신 팁을 사용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고객이 팁 주는 것을 중단하면 임금은 줄어들 것이고 오히려 직원을 잃을 위험이 높다”고 말했죠.

소비자들 사이에서 팁에 대한 불만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금융 서비스 회사 뱅크레이트가 5월 약 24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1%가 기업이 팁에 의존해야 한다기보다 직원 급여를 인상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팁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까지 말했죠.

전통적으로 팁 문화가 없고, 가격에 반영해 매기는 구조인 우리나라에서는 팁 문화 도입에 대한 저항감이 큽니다. 카카오T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서비스 개선을 근거로 추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팁 문화가 일찌감치 계산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도 ‘팁플레이션’ 논쟁이 뜨거운 상황이라, 접근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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