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의 아태지역 확대도 ‘논란’
‘말만 앞선 나토.’ ‘나토(NATO)가 나토(nato)가 됐다.’
지난달 11일부터 이틀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정상회의 결과를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소문자 나토는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할 뿐’(no action, talk only)이라는 약자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나토 가입 시기에 관한 명확한 로드맵을 원했다. 폴란드와 발트3국처럼 소련 압제를 겪어 본 나토 회원국들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했으나 미국은 거부했다. 결국 정상회담 선언문은 “우크라이나는 동맹국들이 동의하고 조건을 충족할 때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대신 우크라이나와 나토 간 협의회를 설치해 이 회담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아울러 가입을 준비하는 국가가 충족해야 하는 회원가입행동계획(Membership Action Plan)을 유보해줬다. 우크라이나에 일종의 특별한 대우를 해주고 전쟁이 종결되면 나토 가입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수 있음을 알려준 셈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 미국 입장을 적극 지지했다. 미국은 나토 예산의 3분의 2를 부담하며 최첨단 정찰기와 항공모함 등을 운용 중이어서 미국이 없는 나토는 무의미하다. 그만큼 나토 운영에서 미국 입장이 중요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의 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토 가입은 자동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회원 가입에 필요한 민주주의, 부패 척결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속내는 따로 있다. 나토 가입 이정표를 주는 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할 수 있고 자칫하면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미국은 우려했다.
전쟁 중인 국가는 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 언제 전쟁이 종결될지 알 수 없는데 가입 이정표를 줄 경우, 자칫하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략할 때부터 러시아와 직접 교전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반대로 폴란드와 발트 3국은 확실한 가입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게 러시아의 또 다른 침략 야욕을 저지하고 우크라이나에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대응했다. 프랑스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회색지대가 있어서는 안된다며 나토가 튼튼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은 앞으로 러시아와의 휴전이나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여부를 협상카드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카드를 미리 쓰지 말고 남겨두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결정에 크게 실망해 “너무 불합리하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미국에 이어 우크라이나에 두 번째로 많은 무기를 제공한 영국까지 이 발언에 발끈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우리는 아마존(쇼핑몰)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불평했다. 매우 긴장된 현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영국에는 현재 지뢰 제거 장비가 하나도 없다. 모두 우크라이나에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가려 이번 회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게 나토의 아태지역 확대 여부였다. 미국은 도쿄에 나토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했지만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토는 어디까지나 북대서양이 작전 반경인 집단안전보장기구인데 역외지역으로 역할을 확대할 필요 없다는 게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크다. 2021년 중국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 가운데 46%가 독일 기업, 프랑스가 10% 정도를 차지했다. 두 나라 모두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된 교역 구조를 조금씩 줄이려 한다. 이 과정이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중국을 자극할 정책에 대해 매우 신중하다.
반면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나토의 역외지역 확대를 계속 추진해왔다. 지난해 여름 마드리드 정상회담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이라고 규정했다. 나토가 지키고자 한 북대서양에 중국은 포함되지 않는데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명시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태지역의 4개 국가, 우리와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AP4라 부름)가 나토 정상회담에 초청받았다. 미국은 이 가운데 나토 역할 확대에 가장 적극적인 일본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려 했다. 앞으로도 미국은 이런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도 쉽사리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는 2년 연속 나토 정상회담에 초청을 받았고 나토와 대테러 및 사이버방위 등 11개 분야 협력을 제도화하는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체결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의 안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미국 주도의 나토 확대에 우리도 동참했다. 그러나 중국은 나토의 아태 지역 확대를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후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외교정책을 실행해왔다. 하지만 외교는 가치와 이익의 적절한 접점을 찾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무역의 21% 정도가 가는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프랑스와 독일의 나토 확대에 대한 신중한 정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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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