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역내 지역 통화 사용 촉진 TF 합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위안화 거래 늘려
세계 외화준비금서 달러 비중, 2000년대 70%서 59%로
지난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남미 4개국 정상은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4년 만에 이뤄진 대면 회의에서 4개국 정상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를 비롯한 여러 경제적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공동통화도 논의됐다. 회의장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브라질과 회원국 사이에 공동통화로 결제하자”고 말했다.
공동통화는 연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발표한 구상으로, 달러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안됐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왜 무역 결제 시 자국 통화가 아닌 미국 달러를 사용해야 하느냐”며 달러 1강 체제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공동통화는 애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 거래에 쓰일 목적으로 제시됐지만, 룰라 대통령은 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서까지 거론하며 사용처 확장을 기대했다.
이 밖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3월 말 달러 의존 탈피를 위해 역내 결제 시 지역 통화 사용을 촉진하는 태스크포스(TF) 설치에 합의했고 인도 중앙은행은 지난해 7월 자국 통화 루피를 통한 대외무역 결제를 허용했다. 올해 3월 기준 영국과 러시아 등 18개국 금융기관이 루피 결제용 계좌를 개설했다.
이 같은 추세에 달러 입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통한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월 기준 44.2%로 집계됐다. 단연 1위의 성적이지만, 절반에 미치지는 못한다. 또 세계 각국이 보유한 외화준비금에서 달러 비중은 2000년 전후 70%에서 올해 1분기 59%로 10%포인트(p) 넘게 떨어졌다.
이 틈을 타 최근엔 중국 위안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6월 세계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달러와 유로에 이어 3위(4.20%)였다.
배후엔 서방의 제재를 피하려고 위안화 거래를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 VTB은행에 따르면 모스크바 등 도시 지역에서의 위안화 운용자산이 급증하고 있다. 6월 말 기준 러시아 도시의 위안화 외화예금잔고는 100억 위안(약 1조8139억 원)을 넘어 연초 대비 1.5배 이상 불어났다. 반면 달러와 유로는 크렘린궁의 비우호국 지정에 따라 2025년 말까지 예금에서 자취를 감출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위안화 거래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어 추후 입지는 더 강화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3연임을 사실상 확정 지은 지난해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에서 “위안화의 국제화 질서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4월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달러의 역할과 연계된 대러 금융제재를 펼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러 입지가 약화할 위험이 있다”며 “이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에 대안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과 동맹은 대러 제재를 가하기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