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관 업체 근절을 선언하고, 계약 취소에 나섰지만 오히려 부동산 시장 불안은 커져만 가고 있다. 당장 전관 고용 능력을 갖춘 대형사가 LH와 계약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공공주택 공급 계획이 중단되거나 아예 취소될 우려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LH는 기존 계약 해지에 따른 법적 부담도 짊어질 판이다.
21일 국토부와 LH 등에 따르면 LH는 지난달 31일 ‘LH 발주 공공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발표 이후 체결된 전관 업체와의 계약 11건을 모두 해지한다고 밝혔다. 계약 규모는 총 648억 원(11건)이다.
문제는 전관 근절 이후 LH의 공공주택 공급 능력 저하다. LH 발주 공사를 수주해 설계와 시공, 감리를 수행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업체 중 상당수가 전관 논란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LH에 따르면, 전국에 ‘건축사 20인 이상’ 규모의 대형 건축사 사무소는 175곳이다. 동시에 최근 5년간 LH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74곳으로 전국 대형사 건축사 사무소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LH가 발주한 공사를 소화할 정도면 대형 사무소 말곤 없다. 그런데 전관 채용도 대형 사무소 위주로 이뤄지는 구조”라며 “5인 규모 소규모 사무소는 대형사의 하청 작업을 받아 수행하는 곳이거나 소규모 주택, 근린생활시설 정도만 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미 LH 발주·착공 물량 급감도 포착됐다. 하반기 LH는 총 8조2000억 원 규모의 공사와 용역을 발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반기 발주한 10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는 ‘청주동남 A2’(1410억 원), ‘남양주왕숙 공공주택지구 조성공사’(1267억 원), ‘군산신역세권 B1’(2107억 원) 등 소수에 그쳤다. 또 통계청 ‘주택건설 착공실적’ 분석 결과 지난해 상반기 LH 공공분양 착공 물량은 2587가구였지만, 올해 상반기는 단 한 가구도 없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이번 사태로) 공공주택의 경우 최대 2년 정도 공급 차질 영향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용역과 설계, 시공 등 모든 분야에서 전관 근절을 이유로 지연되고 있고 앞선 계약도 취소했는데 해당 건들은 내년도 착공 건이 대부분일 것이므로 당장 공급량이 줄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LH가 앞서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해지에 따른 위약금과 법적 분쟁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한준 LH사장도 전날 간담회에서 “법적인 문제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공사계약일반조건’ 등 관련법에 따르면 발주기관의 사정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계약 보증금 전액과 함께 계약해지일 이전에 투입된 계약 상대자의 인력과 자재, 장비 철수비용 등을 물어야 한다. 계약금을 10%로 가정하면, 이번 11건 취소만으로 65억 원 이상의 비용 소모가 불가피하다.
또 계약 해지 이전 상황에 따라 추가 손해배상청구 등의 법적 분쟁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계약금 지급 단계를 넘어선 단계일 경우 계약금 배액을 넘어 일방적인 계약 파기의 경우 보통 상황에선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LH뿐만 아니라 국토부 역시 전관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건설 카르텔 근절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정부공직윤리시스템 분석 결과 국토부 4급 공무원 한 명은 5월 퇴직 후 다음 달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 재취업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퇴직한 4급 공무원 역시 1월 건설기술교육원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이직했다. 서울교통공사와 SR(수서고속철도), 세종교통공사 등 유관 공기업 이직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최 교수는 “정부의 전관 근절 방안이 나오더라도 취업 제한의 예외인 소규모 자회사를 대형사들이 설립해 전관을 영입하는 꼼수가 얼마든지 나올 것”이라며 “아예 전관 인사를 양지로 끄집어내 투명하게 관리하는 등 큰 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