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 침해? 정당한 법집행?…잇단 로펌 압수수색에 변호사들 ‘규탄’

입력 2023-08-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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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수사 편의 위해 기본권 침해”…법무법인 압수수색에 반발
검찰 "증거 확보 위한 적법한 영장 집행…변론권 제한과 무관"
법조계 우려 목소리…“변호사에게 진실 숨기는 결과 낳을 수도”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들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 등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들이 최근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에 반발하며 수사기관과 법원을 규탄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수사기관의 입장에 반해 변호사와 의뢰인 간 신뢰 훼손은 물론 국민 기본권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 부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기관은 편의를 위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 신뢰 관계를 해치고 있다”며 “압수수색 행위를 중단하고 법원은 영장 발부에 신중하라”고 촉구했다.

김영훈 협회장은 성명에서 “헌법은 누구나 체포·구속될 경우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변호사법 또한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유지권은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핵심 권리”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검찰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한 법률자문 내역을 입수하는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엄연히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으로 의뢰인의 자료가 수사당국에 넘어간다면 어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겠나”라며 ”근래 사태들은 변호사와 의뢰인간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고 법치주의를 후퇴시킨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달 들어서만 법무법인 등을 세 번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4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재판 위증교사 의혹 수사 과정에서 위증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이 모 변호사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같은 날 수원지검은 뇌물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의 변호인 중 한 명인 현근택 변호사에 대해서도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20일에는 SM엔터테인먼트 주식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 서울남부지검의 지휘를 받아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율촌은 올해 초 카카오와 하이브가 SM엔터 인수전을 하고 있을 당시 카카오측 법률자문을 맡았다.

검찰은 증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법원에서 적법하게 발부 받은 영장을 집행했을 뿐 아니라 변론권 제한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특히 김용 전 부원장 재판 관련 이 변호사 압수수색의 경우 증거와 명백히 배치되는 위증 혐의와 다수인의 조직적 가담 정황 및 물적 증거를 위조한 사실까지 확인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국기게양대에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들은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질 때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 비밀유지권(ACP, Attorney-Client Privilege)’ 법제화를 요구해왔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만 규정할 뿐, 수사기관이 강제수사에 나설 경우 사실상 맞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ACP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승낙이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주고 받은 의사소통 내용, 서류나 자료 등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변협에 따르면 OECD 36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만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ACP를 명문화하는 변호사법 일부개정안 3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학계에서는 압수수색으로 의뢰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애라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2019년 8월 낸 ‘의뢰인-변호사 간 비밀유지권에 관한 검토 및 개선방향’ 논문에서 “적법절차 원칙이나 당사자의 방어권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방해가 될 경우 양보될 수 있다면, 고문하거나 보강 증거 없는 자백을 근거로 유죄가 선고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밀유지권은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 보장과 사회 전반의 법치주의 강화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뢰인이 변호사와 상의한 내용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증거라고 비밀유지권의 보호 범위를 축소한다면, 의뢰인이 변호사에게조차 진실을 숨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가 당사자를 변호하는데 압수수색 당하면 위축된다. 변론권이 침해될 여지가 많으니 검찰과 법원은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변호사가 범죄를 야기하거나 위증 의심이 드는 최근 재판을 보면, 예외적으로 압수수색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한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편의가 크기 때문에 압수수색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강제수사는 예외인 만큼 임의제출 형식 등 방법이 있다”며 “영미법 국가에서는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에 있어 수사기관으로부터 서약서를 받는 등 여러 제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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