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화학물질 등록 의무 기준과 산단 입주 업종 제한 등 킬러규제 손질에 나섰지만 곳곳에 남은 낡은 규제가 중소ㆍ벤처기업의 발목을 여전히 붙잡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계 환경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신발 속 돌멩이’ 제거에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간한 ‘중소기업이 선정한 킬러규제 톱100’(이하 킬러규제 100)에는 기업들이 현장 애로로 지목한 규제들이 대거 담겼다. 신산업ㆍ입지ㆍ환경ㆍ노동ㆍ인증ㆍ판로 등 7개 분야로 모두 100건에 달한다. 단순 민원성 건의를 모두 제외해 추린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계의 성장을 짓누르는 규제가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소기업계가 시급하다고 보는 규제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외국인 근로자 고용 정책, 인증제도 개선,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의 유예기간 연장 등이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정부가 지난 24일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혁파 방안으로 내놨던 방안으로 개선안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이 높다. 다만 관련 입법을 개정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어 현장에서 완전히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전엔 안심하긴 이르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가 산업현장의 일자리 미스매칭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 인력 도입 규모를 2배 이상 확대하기로 했지만 내국인 근로자 수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 개선 역시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내국인 근로자가 애초에 오지 않는 사업장이나 업종의 경우 불법 외국인 고용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관련 제도 개선이나 폐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도도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규제로 지목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 25조에 따른다. 사업장이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임금체불 등 귀책사유에 대해 허용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이 해당 제도를 이직 수단으로 삼는 사례도 발생한다. 중기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활용기업 중 68%가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요구받았고, 이 중 97%가 실제 계약 해지로 이어졌다.
인증 부담도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연매출 50억 원 규모의 한 자전거 제조업체 관계자는 “국제인증은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 해당 인증을 취득하면 사실상 국내 인증 내용도 모두 충족됐다고 봐도 무방한데, 국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과도한 규제”라고 설명했다. 인증 제도를 사실상 옥상옥 규제(이중 규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수출 기업의 경우 정부의 해외규격인증획득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한도는 연간 1억 원 수준이다. 몇 건의 인증을 받고나면 한도를 금세 소진해 지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최근 중국의 경기 불확실성과 정치적 리스크 등으로 중소기업의 수출 여건이 녹록지 않은 만큼 관련 규제 완화와 지원 확대 목소리가 크다.
이번 킬러규제100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분야는 ‘노동’이다. 근로시간 제도와 중대재해법, 실업급여수당 지급조건 등 그간 중소기업계 모래주머니로 꼽혀온 노동 현안들이 지목했다. 특히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이 약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시행 시기를 유예해달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중소기업계는 이런 곳곳의 규제가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실질적인 규제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화평법, 화관법 등을 포함한 킬러규제 대부분이 국회의 입법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로 한다”며 “복합경제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행정과 마지막 정기국회의 민생입법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