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건 지난달 31일입니다. 이 대표는 이날 당 대표 1주년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집권을 막진 못한 잘못이 자신에게도 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표는 ‘윤 정부 책임론’을 강조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민생을 지켜야 할 정권이 안전을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괴담이라 매도하며 겁박하고, 국민과 싸우겠다고 선전포고한다”며 “2023년, 이 땅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가 파괴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대표는 단식에 돌입하며 윤 대통령에게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죄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 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단행 등 3개 안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스스로 곡기를 끊는 단식 농성. 이는 정치인이 의사 관철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 야당 정치인들은 단식을 민주화 투쟁의 수단으로 삼았죠. 당시 정치인들의 단식은 직선제 개헌, 지방자치 선거 시행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계기로 작용했는데요. 작금의 상황은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단식 투쟁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급됩니다. 이들의 단식은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한 정치적 투쟁의 의미를 보여주는데요. 단식을 통해 당시 정부의 대항마로 평가받았으며, 민주화 투쟁 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도 불러일으켰습니다.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 운동 3주년이었던 1983년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전 신민당 총재로서 단식을 벌였습니다. 단식에 나서기 전엔 성명서를 내고 ‘5개 민주화 요구 사항’을 발표했는데요. 여기엔 △언론 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 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명 이상의 경찰, 정보원 등이 자택을 둘러싼 가운데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가택연금 상태였던 데 따른 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병원에 강제 이송됐지만, 수액을 맞으며 단식을 이어갔습니다. 6월 8일 밤 지지자들이 병실로 찾아가 단식 중단을 요구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앉아서 죽기보다는 서서 싸우다 죽겠다”며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23일 만이었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건 요구사항 중 곧바로 이뤄진 건 없었으나, 전두환 정권은 그의 가택 연금을 해제했고, 미국에서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이듬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 1985년 2월 12대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이 부는 등 독재 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 세력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3일간 단식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이었던 1990년 △내각제 반대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등을 주장하며 단식 농성에 나섰는데요. 이듬해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뜻을 이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 활동을 사실상 전면 금지당하고 신민당 총재 자리에서도 물러난 상황에서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218석의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거대 여당에 소수 세력(평민당 의석수 70석가량)으로 맞섰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이들은 단식을 통해 여당의 독주에 대응했다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이후 단식은 특정 정책 추진을 촉구하거나 저지하기 위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4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시절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며 참사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와 함께 단식에 나섰죠. 김 씨가 46일 만에 건강 악화로 단식을 중단하자, 문 전 대통령도 10일 만에 단식을 멈췄습니다. 이후 한 달여 뒤, 세월호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같은 정치인들의 단식은 큰 파문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의 단식 투쟁이 되레 조롱거리(?)가 된 일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죠.
2019년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철회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반대, 공직선거법 개정 반대 등을 내세우며 8일간 단식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야당 내에서도 “뜬금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는데요. 일각에서는 그가 당내 리더십 부재 논란을 돌파하기 위해 단식을 택한 것 아니냐며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죠. 그는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단식을 끝냈습니다. 내걸었던 요구사항 중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그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해주 중앙선관위원 임명을 반대하며 ‘릴레이 단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오전 조, 오후 조가 돌아가면서 5시간 반씩 굶는 방식이었는데요. 곳곳에서 ‘이걸 단식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비아냥이 쏟아졌고, 이는 결국 흐지부지 마무리됐습니다.
이 대표의 이번 단식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진정성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이 대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농성을 진행하고, 나머지 12시간은 국회 본청 당대표실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단식 농성이라고 하면 온종일 농성장을 지키는 장면이 떠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출퇴근 단식’이라는 전례 없는 방식이 지적받고 있는 겁니다.
이 대표의 단식은 검찰 출석 일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앞서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지난달 23일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제3자뇌물 혐의로 이 대표에게 8월 30일 출석해 조사받을 것을 통보했으나, 이 대표가 “내일(24일) 오전 바로 조사를 받으러 가겠다”면서 검찰과 소환 일정을 두고 이견을 보였습니다. 결국 8월 30일 소환조사는 무산됐죠. 검찰은 2019년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가 쌍방울의 대납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최근 이 대표를 입건한 바 있습니다.
이후 검찰은 이 대표 측에 9월 4일 소환조사에 응할 것을 재차 요청했으나, 이 대표 측이 검찰에 “4일에는 출석이 불가능하고 이달 11∼15일 중에 출석하겠다”고 하면서 두 번째 소환조사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달 1일엔 이 대표가 돌연 “4일 오전에만 조사받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오전 2시간 만에 조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해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죠.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검찰 소환 조사가 계속 연기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대표가 단식 투쟁을 이어가면서 건강이 악화한다면 향후 조사 일정은 더 늦춰질 수 있습니다. 검찰도 이 점을 우려해 “이 대표의 단식으로 피의자 조사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는 수사와 재판 및 국회 일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향후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할 것이며, 일반적인 피의자 출석과 조사에 관한 절차에 응해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표가 정기국회 개회 직전 단식에 돌입했다는 데 대해서도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왔는데요. 국민의힘에서는 “뚜렷한 목적도, 합리적 명분도 찾기 힘든 ‘묻지마 단식’”, “대국민 공갈·협박” 등 비난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단식이 사법 리스크, 당내 갈등 등 당내 안팎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더군다나 이 대표는 현재 의석 168석을 보유한 제1야당의 대표라는 점에서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과거 소수 야당의 지도자들이 목숨을 건 마지막 수단으로서 단식을 벌인 것과 영 다른 모양이 연출되고 있다는 건데요.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단식 투쟁을 분리하지 않는 이상, ‘방탄 단식’이라는 질책에서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