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와 애매한 과세 규칙에 기업들 떠나
자민당, 지위 회복 위한 웹3 백서 출간
과세 개정, 전문 장관 신설 등 제안
경제산업성, 전담 부서까지 설치
일본 집권 자민당이 4월 발간한 웹3.0 백서에 적힌 문장이다. 자민당은 지난해 봄 디지털사회추진본부 산하 웹3.0 프로젝트팀을 가동해 백서 출간에 나섰고 1년 만에 35페이지짜리 백서를 내놓았다.
‘일본이 다시 돌아왔다(JAPAN IS BACK, AGAIN)’라는 부제로 시작하는 본문 첫 페이지부터 자민당은 잃어버린 지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자민당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가상자산(가상화폐) 업계를 이끌던 일본이 어느새 국내외 기업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존재가 돼버렸다”며 “규제 강화와 과세 규칙의 불명확성 때문에 시장은 빛을 잃어갔고 기업들은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자책했다.
사인보다 도장, 인쇄보다 수기에 익숙한 ‘아날로그’ 일본이 웹3.0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자금결제법이 개정되면서다. 일본 금융청은 이 법을 통해 처음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명문화함으로써 자국 내 발행을 허용했다.
자민당은 “자금결제법 개정 후 대형 금융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보급을 본격적으로 검토한다고 표명했다”며 “또 대형 통신사를 중심으로 웹3.0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웹3.0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는 해”라고 강조했다.
백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웹3.0 장관직 신설이다. 웹3.0 장관에게 주어진 임무로는 △관련 경제 정책 추진 △대외 홍보·협력 △부처와 기관을 넘나드는 협의 데스크 등이 나열됐다.
세금 규칙 개정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단기 매매 의사가 없는 가상자산 보유자에 대한 과세 시 시장가가 아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적용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가상자산끼리 교환한 시점에서 과세하지 않고 해당 자산을 법정통화로 교환한 시점에서 과세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밖에도 △분산형 자율조직(DAO) 특별법 제정 △더 명확한 회계 표준 마련 △스테이블코인 유통 환경 개선 등이 웹3.0 환경을 위한 과제에 포함됐다.
자민당 백서에 앞서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7월 ‘웹3.0 정책 추진실’이라는 정책 개발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경제산업성은 성명에서 “Z세대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가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되면서 웹3.0의 사업적 가치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생겼다”며 “국내외 웹3.0 사업 환경과 관련해 사업자와 투자자, 법조계, 엔지니어 등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사업 환경을 정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선 개인의 가상자산 소득세율을 20%로 낮추고 발행업체의 미실현 이익에 대한 법인세를 폐지하는 등의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최근 공식 석상에서 웹3.0을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으며 관심을 표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7월 도쿄에서 열린 웹X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웹3.0은 신자본주의의 일부”라며 “일본 정부는 신자본주의라는 더 큰 비전에 맞춰 웹3.0을 강화하고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주요 기업들이 메타버스 환경에서 가치 있는 경제 구역을 창출할 대규모 야심 찬 프로젝트를 발표할 것”이라며 “웹3.0 산업이 활력을 되찾아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의 윤창배 애널리스트는 8월 보고서에서 “최근 몇 년간 일본의 디지털 자산 정책은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이용자 보호와 함께 토큰 활용과 콘텐츠 산업 활성화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며 “정부 주도의 우호적인 디지털 자산 규제 환경 변화는 향후 더 많은 기업의 웹3.0 진입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웹3.0 발전에 앞장서는 국가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은 5월 ‘인터넷 3.0 혁신 발전 백서’를 공개하고 2025년까지 매년 1억 위안(약 181억 원)의 특별기금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8월 두바이가 연말까지 대규모 상업 라이선스를 지원해 600개 넘는 웹3.0 벤처를 유치한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한국의 경우 올해 초 국회에서 ‘웹3.0 ESG 얼라이언스’가 공식 출범하는 등 관련 움직임을 보인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규제·지원과 관련해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