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배우조합(SAG) 파업에 작품 얘기 못 했지만
배우들 “한국 환대에 감동” 입 모아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대표작을 갱신하며 이름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 존 조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으로 공식 초청돼 한 무대에 올라 국내 관객에게 받은 환대에 고마움을 표했다.
두 배우와 함께 ‘미나리’ 정이삭 감독, ‘푸른 호수’ 저스틴 전 감독 등 할리우드에서 바쁘게 활동 중인 한국계 영화인 4인을 한 자리에 모은 유례없는 특별전이 성사되자 이날 현장에서는 국내외 취재진은 물론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지부 등 유관 업계의 관심도 쏠렸다.
6일 오후 부산 해운대 KNN시어터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스티븐 연은 “한국에 온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마치 집에 온 것처럼 환대를 받았다”면서 “낯선 게 없고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전날 오후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픈토크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직접 만나 소통에 나선 존 조 역시 “마음을 한껏 열어 나를 가족의 한 일원으로 받아준 느낌이라 굉장히 감동했다”면서 “여러분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사는 삶을 궁금해해 준다는 게 너무나 큰 기쁨”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두 배우는 미국 이민 1세대인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미국인 2세다. 발자취를 따라갈 만한 롤모델 없이 독자적인 개성과 실력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배우들이다.
존 조는 미국 영화계의 상징적인 우주SF물 중 하나인 ‘스타트렉 비욘드’와 오직 스크린 안에서만 서사를 전개하는 독특한 방식의 흥행 스릴러물 ‘서치’에 출연하며 존재를 확실히 각인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스티븐 연은 미국 인기 좀비 드라마 ‘워킹 데드’와 올해 에미상 13개 부문에 오른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에 출연하며 입지를 단단히 했다.
다만 이날 현장에서는 이들의 대표 출연작에 얽힌 에피소드 등 전반적인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전에 없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두 배우가 소속된 미국배우조합(SAG)이 할리우드 현지에서 영화제작사와 OTT 등을 상대로 ‘임금 및 재상영분배금(Residuals) 인상’, ‘배우를 대체하는 AI 사용 금지’ 등의 조건을 걸고 5개월 넘는 파업을 진행 중인 만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배우들이 그간 출연한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현장 진행을 맡은 박도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2년 전부터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겨우 한 자리에 모셨더니 파업이라 작품 발언도, Q&A(관객과의 대화) 참석도 할 수 없어 좀 원망스럽기도 하다”는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배우로서의 생각을 묻는 국내 언론의 말이 나오자 스티븐 연은 “파업은 예술가를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산업이 바뀌는 환경에서 (배우는) 많은 영향을 받는데 안전망이 없다”고 그 필요성을 설명했다.
존 조 역시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이 하는 표현을 기계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힘을 보탰다.
두 배우의 작품 이야기가 제한된 대신, 참석자들은 한국계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느껴온 감정이나 최근 크게 부흥한 한국 콘텐츠를 바라보는 느낌 등을 진솔하게 표했다.
최근 한국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피지컬:100’을 흥미롭게 봤다는 스티븐 연은 “우리 스스로를 (서양에)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할 것인지를 재정의하는 느낌이었다”면서 “디아스포라로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 콘텐츠 웨이브가 위안이 된다”고 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미나리’ 정이삭 감독은 “우리는 부모님에게 영화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컸고, 미국에서 롤모델을 찾을 수 없어 스스로 길을 개척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런 면에서 보면 많은 한국 영화가 무언가를 벤치마킹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완성된 것이 우리와 비슷한 점일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의 관객들이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영화인들이 만든 작업을 보며 신선함을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