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가 KDB생명 인수를 포기했다. 9년 만에 새주인을 찾을 것으로 기대됐던 KDB생명 매각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시장에서는 KDB생명의 신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이 낮은 데다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해 최소 5000억 원 이상을 신규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 하나금융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업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하나금융이 ALB생명, 동양생명 등 우량 매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18일 KDB칸서스밸류 PEF는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나금융으로부터 KDB생명 인수 포기 의사를 전달받고, 하나금융과의 매각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KDB산업은행은 KCV PEF의 업무 집행사원으로서 KDB생명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과 함께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향후 처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최근 모로코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강석훈 산은 회장을 만나 먼저 인수 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KDB생명 인수는 당 지주의 보험업 강화 전략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인수를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1월 삼일회계법인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입찰 공고를 낸 뒤 KDB생명 매각에 나섰다. 거래의 매각 대상은 산업은행 측이 보유한 KDB생명 지분 95.7%였다. 하나금융은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해 7월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고,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실사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KDB생명의 신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6월 말 기준 1분기 67.5%(경과조치 적용 전)으로 보험업법 상 마지노선인 100%를 밑돈다. 또한, 향후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해 최소 5000억 원 이상을 신규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 하나금융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의 도움에도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지난 5월 KDB생명에 216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을 때 전량을 인수했다. 이어 6월 후순위채 900억 원과 8월 유상증자 1425억 원, 9월 후순위채 1200억 원 발행에도 모두 참여했다.
산업은행은 추후 최대 3000억 원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DB생명이 3000억 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면 산은이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KDB생명의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하나금융이 KDB생명 인수 후 투입해야 하는 자금도 줄어든다.
보험사 인수합병(M&A)의 흥행 ‘가늠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나왔던 보험 시장은 실망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인수자를 찾는 보험사들에게도 악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M&A 시장에 나온 다른 보험사들도 금융지주사의 인수를 바라고 있는데 보험업종 매력도가 떨어져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증자에 참여해 원매자의 추가자금 투입 부담을 낮추는 등 매각 의지가 남다른 상황이었는데도 매각이 불발돼 아쉽다"라며 "수년째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져 KDB생명의 경영실적이 더 악화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이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생명보험사 인수 의지를 보인 만큼 다른 생보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온다. 현재 시장에는 롯데손해보험과 ALB생명, 동양생명 등 우량 매물이 나와 있다. 특히, 잠재 매물로 평가받는 동양생명의 경우 KDB생명보다 자산 규모가 두 배 크고 순이익은 3~4배 많다. 동양생명은 다른 보험사에 비해 자산 규모도 크고 재무 상태도 안정적이라 인수 후보자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다자보험그룹이 보유한 ABL생명은 최근 매각 절차를 본격화했다. ABL생명의 매각 예상가는 최대 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매각가로 최대 ‘3조 원’이 언급되는 롯데손해보험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도 하나금융지주가 꼽힌다.
IB업계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KDB생명 외에 다른 생보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KDB생명 정상화에 1조 원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동양생명을 인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