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언어모델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다양한 창의성이 촉발되고 있다.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와 같은 번역기가 대규모언어모델 번역기와 융합되면서 더욱 진화하고 있다. 번역 전문 대규모언어모델의 매개변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예를 들어 딥엘(DeepL)의 매개변수 규모는 60억 개에 불과하다. 참고로 매개변수란 인간의 뇌세포의 시냅스에 대응한다. 이를 늘리면 성능이 개선될 수 있다. 대규모언어모델이 논리 퀴즈에서 취약한데,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복잡한 구조의 문장 해석도 개선될 것이다. 용어집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번역기를 이용하면 전문 학술지의 번역 결과물은 꽤 그럴듯하다.
인공지능에 의한 기계번역이 자동화되는 시대를, 그래서 의사소통과 지식을 배우기 위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시대를 신 바벨 시대라 할 수 있다. 기술 발달 속도를 보면 신 바벨 시대는 몽상이 아니다. 신 바벨 시대가 오면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고, 글로벌 노동유연성이 높아지며, 언어가 비관세 무역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며, 지식의 유통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신 바벨 시대는 한국사회에 여러 위험과 기회를 세트 메뉴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신 바벨 시대의 어학 교육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다루겠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중고 정규교육과정에서 영어 수업 시간은 787시간으로 800시간에 조금 못 미친다. 인강을 듣고 자습을 하며 학원에 다니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두세 배 이상이 들 것이다. 이 시간을 과학, 기술, 공학, 예술 및 수학을 통합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STEAM에 투자한다면 한국사회의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다. 좋은 텍스트를 읽고 동서양을 가로지르고 남북을 관통하는 다양한 세계관을 배울 수 있다면 인류를 포용할 수 있는 기초를 닦을 수 있다.
어학 교육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남아프리카의 반투어를 배워 우분투의 정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분투는 ‘개별 인간은 더 크고 중요한 관계적, 공동체적, 사회적, 환경적, 영적 세계의 일부’임을 뜻한다. 인도어를 배워 순환적 세계관을 배울 수 있으며, 아랍어를 배워 이슬람 공동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어학을 배우는 목적이 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문화권과 사회의 세계관을 배우는 데 있게 될 것이다.
신 바벨 시대에는 외국인과 의사소통하거나 다른 언어로 적혀진 지식을 배우는 등 기능적 이유로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게 된다. 좀 더 도발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능적 이유로 외국어를 배워서는 안 된다. 시간과 열정의 낭비이자 경제재인 우리의 시냅스를 낭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국어로 사고할 때 가장 창의적이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창의적인 환경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정책을 쉽게 택할 수 있을까? 영어가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사회계층의 뼈대를 이루고, 영어산업에 많은 사람이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이를 극복해야 한국사회가 한 발 더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신 바벨 시대에 전환적 변화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