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조치 美제조업에도 악영향
압박 거셀수록 中기술자립 서둘러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에 도입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는 새로운 조치를 최근 공개했다. 이번에 강화된 조치는 중국의 슈퍼컴퓨팅과 인공지능(AI) 분야 기술개발을 더욱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조치에 따라 앞으로 미국에서 생산된 AI 칩의 중국 수출 길은 대부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에 AI 칩과 장비를 수출하려는 기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특별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이처럼 강화된 통제 조치가 나온 배경에는 지난 1년 동안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이 AI 칩을 계속해서 구매하고 확보해왔다는 점 때문이다. 당국은 미국 기업이 규칙을 우회하려는 시도를 보았고, 중국 기업은 해외 자회사를 통한 우회 수입으로 규칙을 피했다. 그래서 미 당국은 기존 규정을 재검토하여 회피 경로를 차단하고 수출 통제의 효율성을 높이려 한다.
특히 미국이 주목한 부분은 미중 기술전쟁의 중심에 있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가 지난 8월 7나노미터 프로세서를 탑재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한 점이다. 전화기를 분해한 결과 이 칩은 중국 회사에서 생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막으려고 했던 기술 발전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제조 능력이었다.
이번 화웨이 스마트폰은 중국의 기술 야망을 좌절시키려는 미국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와 칩 제조 파트너인 SMIC에 대해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라는 내부 압력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화웨이 휴대폰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화웨이와 SMIC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는 새로운 수출 통제와는 다른 별도의 프로세스로 진행된다.
한편 이번 조치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가 될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점은 강화된 수출 통제로 AI 분야에서 기술적 최전선에 도달하려는 중국의 야망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AI가 향후 수십 년 동안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광범위할 수 있다.
미국이 더 강력한 수출 통제를 검토하는 동안 알리바바, 바이두, 바이트댄스 등 중국의 기술 기업들은 충분한 재고 확보를 위해 최근 몇 달 동안 50억 달러 이상의 AI 칩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유예기간 없이 즉시 시행됨에 따라 대부분의 주문량은 선적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AI 칩 확보에 실패하면 중국의 AI 기술 야망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반대편에 있는 미국 기업들의 사정도 좋지 않다. 이번 통제 조치는 엔비디아, AMD, 인텔과 같은 미국 제조업체의 중국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리고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Lam, KLA와 같은 장비 업체의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당장 엔비디아가 기존 통제를 준수하기 위해 맞춤 제작한 AI 프로세서 2개의 중국 배송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 본토, 홍콩, 대만시장에 대한 엔비디아의 매출액 비중은 무려 47%에 달한다. 중국 본토에서만 매출액의 20~25%가 창출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은 무역 제한의 장기적인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일부 칩 제조업체는 미 당국의 엄격한 제한 조치에 대응해 치열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도 업계의 우려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국가 안보 보호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광범위하고 일방적인 수출 통제는 해외 고객을 잃게 만들고,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반도체 회사들도 지나친 무역 통제로 인해 미국의 공장과 연구 시설에 투자하는 데 필요한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수출 통제 조치가 최대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매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중국은 AI 분야 연구개발과 생태계 구축을 서두를 것이다.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AI 기술 자립을 달성하려는 중국 내 공통된 합의는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