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로 이상행동 탐지·추적하는 시스템, 공공기관 최초 개발’.
서울디지털재단이 내놓은 발표를 보자마자 혹했다. 생성형 AI와 흉악범죄…. 최근 주목도가 높은 ‘아이템’은 다 들어 있었다. 드디어 시민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대낮 칼부림을 신기술로 막는구나, 기대가 커졌다.
기자들을 상대로 현란한 브리핑이 시작됐다. “‘객체’만 인식하는 기존 시스템과 달리 ‘맥락정보’ AI를 적용해 불가능하던 것도 탐지하고, CCTV 영상 상황을 ‘텍스트’로 설명해 대응 시간을 단축한다.” 그래서 그게 뭔데, 질문이 쏟아졌다. “AI로 투시가 가능하다는 건가?” “개발에 들어간 지 아직 한 달밖에 안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텍스트로 저장된 내용을 한 달 후 삭제한 다음 생기는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건가?” “아직 개발 시작 단계다” “관제에서 출동까지 바로 연결되는 건가?” “이제 막 개발에 착수했다” 들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문답이 핑퐁처럼 오갔다. 결국, 개발하기는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재단이 추진하는 사업은 ‘뻥튀기’되기 일쑤다. ‘디지털 약자를 위한 포용정책’과 ‘메타버스 서울’로 2022년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SCEWC) 어워드’에서 도시전략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게 재단의 최고 자랑거리다. ‘시티넷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 어워드’를 수상하면서 ‘인공지능 하수관로 결함탐지기술’을 우수사례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 수십 억 원이 투입된 메타버스 서울은 사실상 ‘무용지물’이고, 하수관로 결함탐지기술은 실제 판독이 어려워 ‘AS’ 중이다. 디지털 약자를 ‘바보’로 만드는 기술을 더 쉽고 편하게 개선하는 연구 대신, ‘고난도’ 기술을 가르치면서 고통을 체감토록 하는 게 포용인지도 의문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병(病)에 걸린 건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사업의 기본 재료인 공공데이터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공데이터 평가에서 3회 연속 1위를 했다며 발끈했다. 서울시 데이터 품질을 얘기하는데 대한민국이 받은 점수를 들먹인다. 마치 ‘우리 아빠 힘쎄’라는 듯한 치기다. 기관 공공데이터 품질 평가를 담당하는 행안부 관계자는 서울시에 대해 “중간은 간다”고 했다.
그조차도 품질 계획을 수립했는지, 표준을 정의했는지, 기관 간 데이터를 연계하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살피는 것일 뿐이다. 불필요한 데이터가 많고 관계도 제대로 설정되지 않아 결과값에 오류가 발생한다는 지적은 새로운 게 아니다. 얼마 전 교육정보시스템에서 A중학교 문제를 검색했더니 B학교 답안지가 나오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서울시 시스템도 같은 문제가 있고, 이를 개선하면 예산까지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를 ‘괴짜’로 몰아가는 건 예상조차 못한 전개였다. 돈을 더 쓰라는 것도 아니고 아낄 수 있다는데,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관심은커녕 ‘불가능하다’ ‘그럴 수 없다’고 정색부터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괴짜’ 전문가에게 자문한 대구시는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보고 맵(map)을 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중복 데이터가 많고 데이터라고 할 수 없는 게 저장돼 있으며 관계도 제대로 설정되지 않아 오류가 발생한다”며 “불필요한 데이터를 없애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건 중요하고 비용 절감은 당연한 효과”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시스템은 90년대 정보화 사업에 따른 거라 어떤 업체가 어떻게 설계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클라우드 세상으로 넘어가는 상황에 맞춰 가장 효율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가 대구시와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불과 3년 전 사업조차 담당자가 바뀌어 상황 파악에 시간이 필요한 게 공무원 세계다. 그런 입장에서 해당 분야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가 지적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혁신을 DNA로 하는 디지털 정책을 다루면서 변화에 호기심은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뭘 하기는 하려나 보다, 기대라도 할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