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이란 1910년에 일어난 미술 사조로 물체의 선이나 면의 미학적 가치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추상미술은 '도형의 성질'에 관한 학문인 기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미술관)은 16일부터 과천관에서 1920~1970년 사이에 국내에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을 개최한다.
15일 김성희 관장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 언론공개회에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영화 주보, 잡지, 건축 디자인과 어떻게 공명하는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인의 DNA는 대단하다. (당시 디자인이) 지금 세계가 알아봐 주는 한국문화에 바탕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의 말처럼 이번 전시의 핵심 내용은 기하학적 추상이 당시 한국 사회와 어떤 접점을 가졌는지다. 특히 눈여겨볼 전시는 '영화 주보'와 '책 표지' 등에 사용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다.
영화 주보는 쉽게 말해 홍보 목적의 '영화 포스터'다 1920~30년대 제작된 영화 주보를 보면 기하학적인 무늬가 다수 발견된다. 영화의 인기가 급증하면서 단성사나 조선극장은 홍보 전담 부서를 운영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화 주보도 그 과정에서 등장한 홍보 수단이었다.
원래 주보의 표지에는 영화 스틸컷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기하학적인 구성과 원색의 색면을 이용해 추상적으로 디자인한 예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전유신 학예연구사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에게 배포되던 영화 주보의 표지에서 발견되는 기하학적 추상은 이것이 근대적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롭고도 세련된 이미지로 인식됐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문예 진흥의 목적으로 발간된 '제일선'이나 '신인간' 같은 시사 종합지에도 기하학적인 추상 디자인의 표지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제일선' 표지에는 기하학적 추상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전 연구사는 "정치, 경제, 외교, 문예 등을 두루 다루던 종합지들이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된 표지를 채택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는 기하학적 추상이 혁신적 이미지와 계몽의 이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적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건축과도 접점이 있다. 1965년부터 서울의 도시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건축물들은 당대의 미술가들에게는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전 연구사는 "현대적인 도시 서울의 면모는 미술가들에게도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구조와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윤형근, 김환기, 유영국 등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6일부터 일반에 공개되며 내년 5월 19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