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의 성수동은 주말이면 인파로 거리가 빼곡한데요. 이곳을 방문하는 상당수 시민은 성수동에서 운영되고 있는 ‘팝업스토어’에 방문하는 걸 필수 코스로 여깁니다.
팝업스토어(Pop-up Store)는 웹페이지의 팝업 창처럼 단기간 운영됐다가 사라지는 오프라인 매장을 말합니다. 통상 2주에서 6주 정도 운영되는데요. SNS상에서는 성수동 팝업 리스트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기도 합니다. 게시물 댓글에선 친구를 태그하며 “이번엔 여기 가자!”고 제안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죠. 성수동 내 팝업스토어를 살펴보면 먹거리부터 패션·뷰티 브랜드, 캐릭터, 영화, 자동차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이들 매장에선 단순히 제품을 전시·판매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신제품을 처음 공개하며 이목을 끌거나, 게임을 만들고, 화려한 비주얼 아트를 준비하면서 ‘임시 매장’ 이상의 공간을 선보이죠. 브랜드 이미지를 다각도로 강조하는 동시에 잠재적 소비자를 유치하는 체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에 독창적인 기획력, 전문적인 마케팅은 팝업스토어에 필수적인 역량이죠.
그런데 왜 하필 성수동일까요? 성수동 거리에 팝업스토어가 즐비한 배경부터 현재 운영되고 있는 매장까지 알아봤습니다.
성수동이 애초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던 건 아닙니다.
성수동은 1970~1980년대 수제화 공장이 밀집해 있던 동네입니다. 이곳에서 만든 구두가 대한민국 구두의 80%를 책임지고 있었는데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1000곳에 달했던 공장이 무너졌습니다. 수입 신발도 쏟아져 들어오면서 동네 자체가 위기에 처했죠.
한때 방치됐던 성수동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저렴한 임대료, 공업 지역의 색다른 분위기에 끌린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부터인데요. 공장과 창고를 개조해 카페, 식당 등을 만들었고, 이런 매장이 늘어나면서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가 형성됐죠.
성수동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입니다. 우선 지리적 특성이 조명되는데요. 서울숲과 뚝섬 한강공원을 끼고 있어, 자연친화적 공간이 풍부합니다. 이는 많은 도심 속 ‘핫플레이스’와의 차별점으로 작용할 수 있죠. 실제로 성수동에서는 ‘서울숲 뷰’, ‘한강 뷰’를 이점으로 내세우는 매장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성수동에선 서울 어디로든 이동하기 쉽고, 외곽으로 빠져나가기도 좋습니다. 여기에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지식산업센터, 공유 오피스 같은 상업시설과 고급 주거지도 분포해 있는데요. 배후 수요까지 뒷받침되는 셈입니다.
또 강남대로나 청담, 압구정 등 강남권보다 임대료도 상대적으로 낮아, 기업들이 선호하게 됐죠. 이런 분위기를 타고 유행에 민감한 2030세대가 성수동으로 모이면서,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로 이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리테일 상권은 다시 활기를 띠었습니다. ‘서울 6대 상권’으로 불리는 명동, 강남, 홍대, 가로수길, 한남·이태원, 청담 등은 상권 공실률을 낮춰가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죠.
글로벌 부동산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이 가장 많은 명동은 지난해 3분기 45.8%를 기록한 상가 공실률이 올해 3분기 12.7%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룰루레몬, 무신사 스탠다드, 엠플레이 그라운드 등 대형 매장이 메인 상권에 신규 오픈을 앞두고 있어 빠른 공실률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남·이태원(11.0%) 상권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공실률을 1.6% 줄였고, 강남(21.3%) 역시 0.9%의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권이 웃은 건 아닙니다. 한때 패션·뷰티계를 이끄는 대표적인 거리였던 가로수길은 지난해 29.5%였던 공실률이 올해 37.2%로 다시 치솟았습니다. 또 다른 강남권인 청담도 지난해와 비교해 2.7% 오른 18.4%의 공실률을 보였고요. 홍대는 0.2% 공실률이 증가하며 사실상 보합세를 나타냈습니다.
성수동은 어떨까요? 올해 2분기 성수동 상권 공실률은 5.8%입니다. 6대 상권들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치죠.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성수는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팝업스토어 시장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소비자가 체류하면서 인근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현재 성수동에서 운영되고 있거나 이번 주 내 운영을 시작할 팝업스토어는 50개를 훌쩍 넘습니다. 지난주엔 무려 58개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고 합니다.
우선 패션·뷰티 쪽에서는 무신사, 기준, 제이에스티나, 캐나다구스, 꼼데가르송, 이니스프리, 클리오, 프리메라, 반클리프 아펠 등이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매장에서는 옷과 잡화를 전시하며 직접 착용해볼 수 있게 하고, 신상품 라인업도 전격 공개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죠.
또 선양소주, 해태 쌍쌍바, GS25와 파워퍼프걸 팝업스토어도 열리고 있는데요. 선양소주에서는 술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어트랙션존을 즐길 수 있고, 30여 종의 굿즈도 살 수 있습니다. 해태 쌍쌍바 팝업스토어에서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쌍쌍바 커스텀 메뉴가 준비돼 있고, 게임, 네컷 사진, 하이앵글 포토부스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죠. GS25는 인기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의류 등 굿즈 판매와 체험존을 운영 중입니다.
향후 지그재그, 자라, 몰티져스 등도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예정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들 매장 역시 팝업스토어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성수동에 방문한다면, 각 기업의 공식 SNS 채널을 참고해도 유용하겠습니다.
다만 팝업스토어 열풍은 부작용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팝업스토어 임대 형식과 비용은 아파트나 상가 임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몇 주간의 단기 임대고, 임대료는 평당 시세를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인데요. 소위 ‘목이 좋은 곳’은 하루 임대료가 1000만 원 이상으로 뛰기도 합니다. 여기에 인테리어, 마케팅 비용까지 합치면 일주일 팝업스토어 비용이 1~2억 원을 훌쩍 넘죠.
문제는 이런 팝업스토어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임대료 인상에 대한 제한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 되는데요. 이에 건물주들도 팝업스토어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아예 건물을 비워두고 팝업스토어만 운영하는 사례도 늘었습니다.
성수동에 대한 상업적 선호도가 커지면서 임대료도 치솟았습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알스퀘어 등에 따르면 성수동 1~2가(연무장길 일대)의 상업 시설의 평균 매매가는 3.3㎡당 1억3240만 원으로, 3년 전보다 62.5% 상승했습니다. 임대료는 2018년 3.3㎡당 10만 원에서 2022년 15만 원, 올해는 최대 20~30만 원대로 상승했죠. 5년 여 만에 2~3배 증가한 셈입니다.
이처럼 팝업스토어의 성행에 밀려 성수동에 오랫동안 터 잡아 온 가게들이 밀려나면, 결국 상권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성동구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연무장길에서 평당 1억 원 하던 곳이 1억5000만 원, 2억 원으로 잇따라 오르고, 급기야 평당 2억5000만 원에 팔리는 사례도 나오면서 성수동에 추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죠.
지난달 27일 성동구에 따르면 구는 최근 서울시에 기존 아파트나 뚝섬주변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개발 중인 아파트를 제외한 성수동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현재 성수동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한강 변에 있는 성수전략정비 1~4구역뿐입니다. 성동구는 전략정비구역 주변, 재개발 지역을 제외한 미개발지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해달라는 입장입니다. 이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겠다는 취지죠.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달린 만큼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을 극복해야 하고, 서울시의 협조도 얻어야 해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 될 전망입니다. 과연 성수동은 팝업스토어와 터줏대감 가게들이 공존하는 구역이 될 수 있을까요? ‘핫플레이스’ 성수동의 미래 모습에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