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영혼의 파트너’ 멍거 버크셔 부회장, 별세…향년 99세

입력 2023-11-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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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수석 졸업 후 법률사무소 개업
투자 파트너십 병행하며 큰 수익 올려
싼 가격에 주워담는 버핏과 달리 현금 창출 능력 중시
버핏 “멍거 없었다면 나도 없어”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2013년 5월 4일 연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마하(미국)/로이터연합뉴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영혼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9세.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버크셔는 보도자료를 통해 “멍거 부회장이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평화롭게 떠났다”고 발표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24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시간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2차 세계 대전 당시 공군에서 기상 예보관으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하버드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고 1962년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이 회사는 현재 변호사 200명을 거느린 ‘멍거, 톨레스앤드올슨’이다.

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이때부터다. 멍거 부회장은 투자 파트너십 관리를 통해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연평균 24.4%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버핏 회장이 기록한 24.3%보다 높았으며, 이 기간 뉴욕증시 벤치마크 S&P500지수는 연평균 5.6% 상승에 그쳤다.

이후 1975년 버크셔에 부회장으로 취임했고 14년 동안 멍거 부회장의 포트폴리오는 매년 19.8%의 평균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역시 S&P500지수의 5.2%와 대비된다.

▲워런 버핏(왼쪽)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찰리 멍거 부회장이 2019년 5월 3일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마하(미국)/AFP연합뉴스
버핏과 멍거는 오랜 단짝이자 투자 파트너로 살았지만, 투자 방식만큼은 극명하게 달랐다. 버핏 회장의 경우 기업이 파산 직전의 상황이더라도 가격이 저렴하다면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멘토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버핏 회장은 과거 자신의 투자 방식을 담배꽁초를 줍는 행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반면 멍거 부회장은 투자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사업성에 집중했다.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이 미래에 더 많은 보상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버핏과 멍거는 몇 년에 걸쳐 서로의 방식을 두고 대화했고 멍거 부회장은 버핏 회장에게 변화를 촉구했다.

이후 버핏 회장은 1988년 포춘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그는 “나는 멍거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며 “만약 내가 그레이엄의 말만 들었다면 나는 훨씬 더 가난해질 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2018년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동안 한 번도 말다툼을 한 적 없었다”며 “멍거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고마워했다.

멍거 부회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55년 9살이던 아들 테디를 백혈병으로 잃었다. 60여 년이 지나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했다고 WSJ는 전했다.

1978년엔 백내장 수술 도중 의료과실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럼에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고 점자를 독학해 읽는 어려움을 해결했다. 90대 초반까지 직접 운전할 정도로 건강도 잘 유지했다.

멍거 부회장의 별세 소식에 월가엔 애도의 물결이 번졌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은 엑스(X)에 “멍거와 버핏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삶을 크게 향상한 투자팀을 이끌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버핏 회장은 “멍거의 영감과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버크셔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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