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은 소멸하는가”…지구촌이 엄중히 묻는다

입력 2023-12-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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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어제 국내 출산율을 적절한 정책 대응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2050년대 경제성장률이 0% 이하로 추락할 것이라고 했다. 2070년대 총인구는 400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딜레마를 꼬집은 적색 경고다.

연구원은 2021년 기준 한국의 인구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심층연구를 했다고 한다. 합계출산율(0.81명)은 217개 국가·지역 가운데 홍콩(0.77명)을 제외하고 꼴찌였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명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1960∼2021년 합계출산율 감소율(86.4%)은 세계 1위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3분기 기준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0명이다. 연구원이 기준으로 삼은 2021년보다 더 낮아졌다. ‘성장률 0% 이하’ 확률은 더 높아졌다.

한국 저출산 문제는 지구촌도 주목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에서 0.7명으로 줄어든 합계출산율을 소개하며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2067년 한국 인구가 3500만 명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통계청 인구추계도 인용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초토화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전파돼 1353년까지 최대 1억 명 사망자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세계 추정인구는 4억 5000만 명 안팎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총인구의 근 4분의 1을 줄인 대역병인 것이다. 그런데도 NYT 칼럼은 우리 인구문제가 흑사병보다 더 위중하다고 했다. 국가 소멸론까지 대두되니 과하다고 반박하기도 어렵다. 입맛이 여간 쓰지 않다.

백약이 무효라지만 그래도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점은 다행이다. 이번 연구원 제안부터 눈여겨볼 일이다. 연구원은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을 저출산 원인으로 전제하고 OECD 35개국(2000∼2021년) 패널 모형을 바탕으로 출산 여건이 개선될 경우 합계출산율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지 분석했다. 도시인구집중도, 청년고용률, 가족 관련 정부 지출, 실질 주택가격지수 등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조정되면 합계출산율은 최대 0.845명까지 오를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현재보다는 덜 암담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제안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이 어떻게 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왔는지도 배워야 한다. 유럽 합계출산율 1위인 프랑스는 가족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 국가가 아이를 함께 책임진다는 인식을 심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의료비를 전액 환급해주고 방과 후 돌봄,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는 등의 각종 세심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저출산 원인은 복잡하다. 길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인구 위기는 극복돼야 한다. 국가 소멸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범사회적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결혼·임신·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덜 수 있어도 갈 길이 훤히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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