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와 명분 사이…'병립형 만지작' 이재명, 길어지는 고심

입력 2023-12-0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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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병립형 시사
'대선 공약 파기' 혹은 '원내 2당 전락' 부담
연비제 유지돼도 '조국 신당' 등 자매정당 불가피

▲<YONHAP PHOTO-2593> 심각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3.12.1 hama@yna.co.kr/2023-12-01 09:56:22/<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제22대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더불어민주당 내 선거제 논의는 진척이 더디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이 주장해온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에 힘을 싣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비명(비이재명)계 주축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유지 그룹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국회에서 주도하고 이 대표가 대선 공약으로도 내걸었던 준연비제를 유지하면 소위 '명분'은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위성정당을 예고한 국민의힘에 비례 의석을 대거 넘겨줄 수 있고, 사실상 민주당 위성정당이나 다름없는 자매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비례제 논의를 내년 초까지 이어가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MBC라디오에서 "비례제 문제는 (내년) 1월 말까지 시간이 있다"며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면서 당내, 여야 간 협의를 할 생각이고 우선 여당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회귀'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고, 연비제가 유지될 경우에도 위성정당 창당이 확실시되는 만큼 최대한 설득해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주도로 직전 총선부터 적용된 준연비제는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율에 비해 적으면 모자란 의석 50%를 비례대표로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 전까지는 정당 득표율 만큼 47개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병립형 방식이었다. 당시 준연비제를 반대한 국민의힘은 비례 의석을 그대로 확보할 수 있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응했다.

결국 민주당도 위성정당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양당이 비례 의석을 사실상 독식하게 됐다. 소수정당 원내 진입 문턱을 낮추자는 준연비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더구나 내년 총선부터는 비례 30석에만 한시적으로 적용된 준연동형이 47석 전체로 확대된다. 국민의힘이 또 위성정당을 만들면 민주당이 비례 의석에서 큰 손실을 봐 원내 1당도 여당에 넘겨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대표가 지난달 27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인가"며 "총선에서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과거로의 퇴행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고민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연비제로 당이 크건 작건 총선에서 진다는 데이터가 있다면, 그 결과를 보고도 그걸(연비제) 한다는 건 대표 입장에서 어려운 결정"이라면서도 "선거제에 대한 당의 방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내년까지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명계를 중심으로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선거 유불리와 관계없이 공약인 준연비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학영·이탄희 의원 등 30명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병립형과 위성정당은 소탐대실"이라며 "비례 몇 석 얻으려다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지역구는 더 많이 잃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명계 의원모임 '원칙과상식'에서는 "선거 승리를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거제 퇴행으로 가는 것"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창당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낙연 전 대표도 지난달 30일 SBS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예전에는 다당제를 지지하는 듯한 말씀을 여러 차례 했다. 그 입장이 바뀐 것이지는 모르겠다"며 "승부와 관계없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국민이 더 바라는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아름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당내에서는 총선 이후 2년 내 지역구 당선인 수가 비례대표 당선인 수보다 많은 '지역구 다수당'과 비례대표 당선인의 수가 지역구 당선인 수보다 많은 '비례대표 다수당'이 합당하면 국고보조금을 절반으로 삭감하는 내용 등의 위성정당방지법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저해한다는 위헌적 요소가 있고, 실제 위성정당 난립을 방지하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준연비제를 겨냥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송영길 전 대표 등의 비례대표 신당 창당 여부도 변수다. 이들은 이미 총선 출마를 시사한 데다 창당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현재 당적 자체는 민주당이 아니지만 사실상 민주당 인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마냥 민주당과 무관한 정당이라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명계 한 의원은 통화에서 "만약 '조국 신당'이 만들어지면 민주당이 '우리가 의도를 갖고 만든 당은 아니다'라곤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연비제로 힘을 실어버리게 되면 그게 위성정당인 것"이라며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도 "조 전 장관, 송 전 대표 때문에라도 준연비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이들이 '200석', '총선 승리'를 말할 때마다 우리 당 의석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검증된 사람들이 순번을 받을지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송 전 대표는 이날 BBS라디오에서 "지역구에서는 경쟁력 있는 민주당 후보로 힘을 모아주고 비례대표는 가칭 윤석열 퇴진당으로 힘을 모아주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며 "200석 이상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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