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그분 자녀들은 겨우 중고등학생이었어요. 그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몇 해 전 인사를 앞두고 악재성 오보에 홍역을 치러야 했던 한 증권업계 관계자를 두고 최근 식사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여의도 증권가에 인사 시즌이 본격화했다. 지난해에는 대부분 연임을 유지하며 보수적인 인사 기조를 유지했지만, 유독 자본시장 사건사고가 잦았던 올해는 칼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고금리 등 대외변수로 인한 실적악화에 리스크 관리 실패 등을 이유로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사는 초미의 관심사다. 문제는 ‘인사 기사’라는 게 확정되기 전까지는 떠도는 ‘풍문’에 의존해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업 내 인사조직 관리가 소수의 의사 결정권자 사이에서만 폐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보가 나올 때도 잦다. 그러나 인사라는 중대사 앞에서는 온갖 추측과 확인되지 않은 ‘넘겨짚기’도 설익은 이슈로 내던져지곤 한다.
그렇다 보니 인사를 예상할 수 있는 지표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공식은 실적이다. 최근 몇 년도 숫자를 두들겨 본 뒤 올해 실적이 전년과 비교해 개선됐다면 ‘연임’, 악화했다면 ‘교체’로 짐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사에 있어서만큼은 실적 ‘숫자’ 몇 개만으로 CEO(최고경영자)의 인사 향방을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증권사 내적으로는 그 사람과 오랫동안 끈끈히 쌓아온 신뢰관계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 증권사 CEO는 내부적으로 사퇴 결정이 나기도 전에 기사가 먼저 뜨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올해 연이은 주가조작으로 미수채권이 불어나고 급속도로 실적이 악화하자 회사 내부적으로는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흐름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 발표도 전에 경질 보도가 먼저 나오면서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물론 리스크 관리에 철저히 대응하지 못한 점은 뼈아픈 실책이지만, 사내에서는 주가조작이라는 피해갈 수 없던 외부 변수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결정이라는 평가도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로서 자신의 기사가 다른 보도와 차별화된 가치를 갖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정책이나 제도가 아닌, 사람을 두고 쓰는 기사에는 좀 더 신중함을 담겠다는 다짐을 나부터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