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상·민관 협의에도 해열제·진해거담제·기침시럽 ‘수급 불안정’
코로나19, 폐렴,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면서 감기약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제약업계와 소통하면서 약가를 조율하고 증산을 시도 중이지만, 정책 효과가 시장에 나타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해열제와 진해거담제 등 감기 증상 완화에 사용되는 의약품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약을 찾는 환자는 예년보다 급증했지만, 의약품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약국가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코푸시럽’, ‘부루펜정’, ‘코대원정’, ‘어린이부루펜시럽’ 외 다수 제품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포털에 수급불안정 의약품으로 신고됐다.
대한약사회 괸계자는 “제품이 조금씩 공급되고 있지만, 약국마다 편차가 크며 수요 대비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약품 대응 민관협의체'를 운영하며 감기약 증산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보건복지부(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계 및 산업계 단체는 협의체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의약품 생산 및 분배를 협의해 왔다.
감기약 약가를 일시적으로 상향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복지부는 2022년 12월부터 아세트아미노펜650mg 18개 품목의 상한 금액을 최대 76.5% 인상하며 증산을 유도했다. 제약사들은 13개월 동안 해당 품목의 월평균 생산량을 기존 대비 5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들 품목의 보험상한가는 기존 43~51원에서 최대 90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감기약 수급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감기약 주요 성분에 대한 수요가 국내외에서 모두 증가해 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의약품 원료 대부분을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평균 27.8%에 그친다.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 제도 등 기업에 불리한 약가 정책 구조도 증산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의 급여 청구금액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기업과 공단이 협상을 통해 최대 10% 범위 내에서 가격을 조정하는 제도다. 판매량이 많으면 제품의 가격이 인하될 수 있는 셈이다.
감기약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원료를 확보하기 빠듯한 상황에서 시장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회사가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제약사들이 지나치게 위탁생산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자체 공장을 두지 않은 제약사는 위탁생산 업체와 생산량 및 생산시기를 사전에 결정해 연간 단위로 계약한다. 이 때문에 연중 계약 내용을 변경해 생산량을 조절하기 꺼린다는 것이다.
정부는 허가 기간 단축, 원료 생산 지원 등 원활한 수급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남후희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정부가 억지로 증산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원료 생산을 지원하고 원료 변경허가 소요 기간을 단축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 과장은 “다만 많은 기업들이 위탁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생산 스케줄을 변경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점차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