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기한, 통상 유통기한보다 길어
“기업들, 유통기한과 동일해 판매순환 촉진”
올해부터 유통기한을 대신 ‘소비기한’ 표시 제도가 본격 시행됐지만, 시장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제품 라벨표기만 소비기한으로 바꿨을 뿐 기존 유통기한의 날짜와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있어, 소비자 불만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도입된 소비기한 표시제도는 1년간의 계도 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본격 시행됐다. 소비기한은 식품에 표시된 보관 방법을 지키면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그동안 통용해온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식품 유통·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다.
쉽게 말해 소비기한은 식품을 먹어도 되는 기한, 유통기한은 팔아도 되는 기한인 셈이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이 변화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소비기한은 80~90% 앞선 기간으로 설정한다. 예를 들어 라면의 품질 유지 기간이 10일이라면, 유통기한은 6~7일, 소비기한은 8~9일이다.
소비기한의 도입은 식품 상태가 안전함에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는 소비자가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음에도 식품폐기물이 증가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컸다. 또한 고물가임에도 소비자가 애써 구입한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을 명확히 알려 줄 필요가 크다는 여론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올해 소비기한 도입 후에도 기존 유통기한과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농심의 경우, 기존 6개월이던 라면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이름만 바꿨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라면 등 면을 기름에 튀긴 유탕면은 소비기한 참고값이 207~333일이다. 업계는 라면의 소비기한을 8개월 정도로 본다. 오뚜기 역시 ‘3분 쇠고기 짜장’은 24개월, ‘양송이 컵스프’는 12개월로 소비기한을 각각 설정해 기존 유통기한과 차별화를 하지 않았다. 식품기업 관계자들은 “일반적으로 유통기한보다 소비기한이 길기 때문에 소비자 안전을 우려해 별 차이를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도입 초기라, 소비자들도 소비기한을 유통기한으로 쉽게 오인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직 국내에선 소비기한 개념을 인지하는 소비자가 많지 않은데, 영세한 마트의 경우 재고관리가 잘 되지 않아 소비자가 소비기한을 넘긴 제품을 사 섭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소비기한 개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각에서는 제품의 폐기 주기가 길어지면 이익이 줄어들 수 있어 기업들이 소비기한을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소비기한을 명확히 표기하는 것은 섭취가능 기간을 늘려주는 일종의 소비자 권익 보호”라며 “기업들이 소비기한을 짧게 설정해 제품판매 순환을 촉진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