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 시행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중소기업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시간을 더 줘야 한다"며 적용 시점을 미루자고 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쥔 야당은 여전히 미온적인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사과가 먼저"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아직도 민생현장에는 애타게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들이 많이 잠자고 있다"며 중대법 적용 시점에 따른 기업 우려에 대해 언급했다.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등 재해에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받는 중대법 적용 대상이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된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현장의 영세한 기업들은 살얼음판 위로 떠밀려 올라가는 심정이라고 한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중대법 적용 2년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정부가 취약 분야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단체도 마지막 유예 요청임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국회는 묵묵부답"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윤 대통령은 "근로자의 안전이 중요함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면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처벌은 우리 헌법 원칙상 분명한 책임주의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시간을 더 줘야 한다. 가뜩이나 지금 우리 영세기업들이 고금리, 고물가로 견디기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짐을 지우게 돼서 중소기업이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면 그 피해는 역시 고스란히 우리 근로자들과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 재차 "이제 겨우 열흘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현장의 어려움에 한 번만 더 귀를 기울여 주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조건부 찬성'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전제 조건이 지켜져야 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밝힌 전제 조건은 △정부의 사과 △산업 현장 안전을 위한 구체적 계획과 재정 지원 방안 △2년 유예 후 모든 기업에 적용한다는 경제단체 약속 등이다.
민주당이 내건 세 가지 선결 조건은 사실상 모두 충족된 상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7일 당정협의회에서 “1월27일 50인 미만 기업에 법을 적용하기엔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유감을 표했다.뒤이어 당정은 중소기업 안전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6단체는 3일 성명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2년 연장 후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선결조건이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시행일을 명시한 법안이 공포됐는데, 그동안 뭐하다 이제와서 유예하자고 하는 것인가"라며 "정부가 분명히 사과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이어 "유예를 하게 되면 그 기간 동안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당정협의에서 발표한 내용은 작년 초 정부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은 걸 짜깁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제 6단체' 외에 2년 유예 기간이 지나면 법을 적용한다는 정부 등의 확실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월 임시국회 본회의는 25일과 내달 1일 예정돼 있다. 특히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처법이 확대 적용되기 때문에 25일이 사실상 최종 처리 시한이다. 민주당은 전제 조건이 성립되면 언제든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다음 본회의 전까지 여야가 접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