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폴란드 방산 계약 무산 위기
법안 통과해도 곳간 채우기가 관건
한국수출입은행의 수출금융이 ‘한국수출입은행법’에 발목이 잡혔다. 수출금융을 지원해야 할 수은이 지원 한도를 소진하면서 추가 자금 공급이 어려워져 수십조 원대 폴란드 방산수출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금융권에서는 수출금융 확대를 위해서는 수은법 개정을 통한 법정자본금 규모 확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출자를 통한 실질적인 자본금 충당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행 수은법 제4조에 의거해 수은의 법정자본금은 15조 원으로 명시돼 있다. 수은의 자기자본은 법정자본금 15조 원을 비롯해 18조4000억 원가량이다. 수은법 시행령에 따르면 수은은 동일 차주에게 자기자본의 40%(7조3600억 원) 이상을 대출할 수 없다.
앞서 한국은 2022년 폴란드에 무기 17조 원가량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수은과 무역보험공사에서 각각 6조 원을 빌려주기로 약정했다. 이를 제외하면 결국 수은이 폴란드에 추가 대출할 수 있는 한도는 1조3600억 원가량이 남은 셈이다.
문제는 폴란드가 K9 자주포 460문·K2 전차 800대를 추가로 사들이는 2차 계약 과정에서 발생했다. 30조 원 규모의 2차 계약 과정에서 폴란드는 20조 원 이상의 국가 대출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수은법상 추가 지원 한도가 현저히 미미한 상황에서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수은법 개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여·야 모두 수은법 개정에는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 원에서 두 배인 30조 원으로 늘리는 수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오히려 이보다 더해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35조 원까지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놓았다. 같은 당 김병욱 의원도 수은법 시행령에 다른 국가나 정부를 구매 당사자로 계약하는 경우 신용공여 한도를 예외로 하는 내용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지난 10월 발의했다.
다만 수은법 개정안 자체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현재 1월 임시국회 본회의가 25일과 2월 1일 열리지만, 수은법 개정안이 이때 논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쌍특검법(김건희 여사·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재표결과 이태원참사 특별법 등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수은법 개정안 처리는 뒷전이 될 공산이 크다. 수은법 개정이 불발되면 자칫 30조 원 규모의 폴란드 2차 방산 계약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은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곳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 지도 관건이다. 단순히 법정자본금만 늘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재부로부터 현금출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수출금융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행 수은법으로 인해 단순히 방산뿐만 아니라 해외 플랜트 및 인프라 수주, 원전, 첨단전략산업 등 대형 사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했다. 이어 “수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단번에 자본금이 확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주머니만 늘어나는 것”이라며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기재부에서 현금·현물 출자를 해줘야 수은 입장에서도 수출금융의 여력이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