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핵심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들이 줄줄이 유찰되고 있다. 건설 원자잿값 인상과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한 낮은 공사비를 책정해 건설사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SOC 사업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선 민간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인 만큼, 합리적 공사비 책정과 건설사와의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4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입찰을 진행한 정부 주도의 대규모(공사비 1000억 원 이상) SOC 사업 8건이 모두 유찰됐다.
먼저 이달 15일 입찰마감된 서울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 건설 사업(강남역·도림천·광화문) 3건이 유찰됐다. 이 사업은 2022년 장마철 집중호우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는 등 서민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서울시가 호우 피해를 막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 규모는 9936억 원으로, 서울시는 같은 가격으로 재공고를 내고 오는 6월까지 재입찰을 받는다.
또 강남구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GTX-A 환승센터) 사업은 이달 12일까지 입찰을 받았으나 유찰됐다. 공사비 3170억 원 규모로 수도권 신도시들의 서울 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 사업이지만, 시공사를 찾지 못해 재공고를 낸 상태다.
이밖에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3 전시장 건립공사(6169억 원), 광주도시철도2호선 7·10 공구 건설 공사(3022억 원) 등도 유찰됐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올해 SOC 예산 20조8000억 원의 65% 수준인 12조4000억원을 조기 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잇달아 유찰되면서 예산 조기 집행 효과가 '반쪽'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2024 건설경기 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SOC 예산은 전년도(1조1000억 원)에 비해 4.6% 증가한 26조1000억 원으로 책정됐으나, 안전 예산 7000억 원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난 해와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는 건설업계가 요구해온 31조 원과는 격차가 큰 금액이다.
예산 투자의 비효율성도 높다. SOC 분야 예산에 펀성됐던 예정사업이 중지되면서 발생한 불용액은 2010년 이후 연평균 약 1조2000억 원에 달한다. 수정된 국가재정 운용계획에선 SOC 예산을 2027년까지 연평균 2.9% 증액하기로 했는데, 이는 총 지출 증가율 3.6%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는 게 건정연의 분석이다.
업계는 현 수준의 공사비로는 공공발주 사업 수주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설 원자재값이 급등하고, 품질안전관리 비용 등이 불어난 반면 공공 발주 사업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해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규모 SOC 사업을 수주해도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입찰을 안하는 것"이라며 "민간 입장에선 적정 공사비가 확보되느냐가 중요한데, 공공은 현실과 동 떨어진 공사비를 제시하고 있다. 수주를 했다가는 수익은 차치하고 적자 현장을 떠 안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공 사업은 통상 발주처가 공모한 공사비보다 낮은 가격으로 투찰하고, 경쟁을 거쳐 낙찰을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낙찰가의 10~15%정도 감액이 된다. 올해 유찰된 프로젝트들의 경우, 착공과 동시에 적자가 나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성을 검토해서 예비타당성 심사, 적격성 심사 등을 통과하는데 수년이 걸린다. 해당 기간 물가상승률이 초기에 반영돼야 수익성이 확보되는데, 지금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발주처의 유연한 대응 없이는 유찰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결국 업계가 최소한의 마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연한 공사비 책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타이트한 원가구조가 반영된 공사비에서 더 감액을 해버리니 수주한 시공사 입장에선 적자가 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SOC 사업을 차질없이 진행 할 수 있도록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