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주택공급 촉진을 위해 정비사업 규제 빗장을 대거 풀었지만, 다수의 사업지에서 갈등이 이어지면서 단기간 내 공급량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문제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조합원 분담금은 늘고, 분양예정일이 밀리는 등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지는 시공사가 공사를 중단하면서 '제2의 둔촌주공'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재건축 사업은 조합과 시공단이 공사비 인상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2022년 4월부터 약 6개월 간 공사가 중단됐다. 사업 지연으로 공사비는 당초 3조2000억 원에서 4조34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조합원 분담금도 가구당 1억2000만 원 가량으로 증가했다.
2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재개발 사업은 조합 내분으로 공사비 지급이 지연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재작년부터 총 공사비 5807억 원 중 1800억 원을 모두 부담해왔다. 현대건설은 조합 집행부 부재 등으로 공사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이달 1일부터 공사를 중단한 채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대조1구역 재개발은 지상 최고 25층, 총 28개 동 2451가구 규모의 아파트 등을 짓는 사업으로, 강북권 재개발 최대어로 꼽힌다. 이번 공사 중단으로 둔촌주공처럼 조합원 1가구당 평균 1억5000만 원가량의 추가 분담금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송파구 신천동 잠실진주 재건축도 공사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업지에서 백제 유물이 발견돼 공사가 4개월가량 지연됐는데, 시공단(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은 종전 3.3㎡(평)당 660만 원이던 공사비를 3.3㎡당 889만 원까지 인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공사비가 약 2168억 원 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조합원 1가구당 평균 1억4000만 원가량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하게 된다.
높은 분담금에 반발해 시공사와 계약 해지를 추진한 곳도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 5단지 재건축 조합은 최근 총회를 열고 시공사 GS건설의 시공 계약을 취소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원들이 전용면적 84㎡를 받으려면 이 단지의 실거래가(4억4000만 원) 수준인 5억 원의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GS건설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조합을 상대로 6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공사비 문제로 사업 기간이 늘어나면 분양가 산정, 입주자모집공고 등 모든 일반분양 일정도 연기된다. 이는 결국 전체 공급량 감소로 연결되는데, 부동산 R114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분양 물량은 지난해보다 8753가구 줄어든 5만9850가구로,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기관과 정부의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정부가 내놓은 '1.10 대책'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 간의 공사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부분이 아쉽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지자체 도시분쟁조정위원회 조정에 확정판결격인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여하겠단 계획을 두고 강제성이 없고, 분쟁 당사자 간 합의가 전제 돼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분쟁 당사자 간 합의가 돼야 화해 권고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실효성은 크게 없다"며 "다만 공인 기관에서 합의를 중재하고, 재판까지 가지 않고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장치란 점에서 의미는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는 "분쟁조정위를 통해 화해하게 되면 소송 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다만, 이를 위해선 건설사와 조합이 최초계약 당시 소송 이전 반드시 화해조정을 거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반영돼야 한다. 현재 갈등을 빚은 사업지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아 한계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