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차를 타고 떠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게 스스로 이동하는 자율자동차는 최상의 해결책이다. 비록 내 손으로 핸들을 조정하는 건 아니지만, 내 말을 들어주는 이동수단이라니 탐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얘가 확실히 믿을 만한지는 좀 따져봐야 한다. 믿고 맡겼는데 내가 우려하는 일, 즉 나를 포함해 누군가를 다치게 할 확률이-그럴 일이 절대로 없다는 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100%란 건 없으니까-높다면 얘를 데려오는 건 애당초 생각지 말아야 한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수도 없이 생기는데 한낱 기계가 이런 모든 경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거 진짜 안전한 거야? 묻고 또 묻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에 대해 걱정말라 답하는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지금도 통신 위성이 실시간으로 최적의 길을 알려주고 있고, 인간보다 더 믿을 만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자동차의 운행을 책임질 테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 한다.
하기야 운전 중에 SMS 를 쓰거나, 맥주 한 잔은 술도 아니라면서 운전대를 잡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테니 믿으라 말할 수도 있다. 게다가 기분이 나쁘거나 스트레스 과다로 집중이 흐려져 제멋대로 차를 모는 경우도 없을 테니 오히려 인간 운전자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사고의 위험은 낮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율주행차의 장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효율성도 높아진다. 일례로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직장이 어디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에 자동차를 사용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길어도 서너 시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때를 제외하면 자동차는 그냥 쓸데없이 넓은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 거대 쇳덩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기가 알아서 종일 원래의 역할, 즉 사람이건 물건이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계속해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 한 대로도 여러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도 있으니 생산적이다. 게다가 환경 보호에도 일조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차끼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운행하는 ‘군집주행’ 기술을 도입할 경우 운행에 드는 에너지를 최대 25%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컴퓨터가 운전을 똑똑히 제어한다면 추가 에너지 절약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업어주고 싶을 만큼 기특한 녀석이다.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운전한다’는 말은 사라지고, 자동차는 이동하며 사무 처리하고, 휴식을 취하며 취미활동까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될 거다.
위에 나열된 장점들만 보면 자율주행차를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의외로 환영일색은 아니다. 사실 운전면허는 단지 1톤 가까이 되는 쇳덩이를 움직일 수 있는 자격 그 이상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자유’가 내포돼 있다.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
그런데 보안시스템이 장착된 컴퓨터가 이동을 책임지는 순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도 순식간에. 운전을 제어하는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그걸 어느 IT 기업이 만든 것인지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관련 정책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따라 내가 어디를 가고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 하고 있는지까지 모조리 알려지고 컨트롤당할 수 있다. 게다가 특정 거리나 구역에서 운전하는 게 금지되거나, 마우스 클릭만으로 보험 보장이 철회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좀 더 극단적인 경우엔 온라인으로 운행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운전할 장소, 운전 할 시기 그리고 운전 여부가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는 스마트 시티가 반갑기만 하진 않다. 동시에 안보, 경제적 효율성 혹은 생태 등의 미명 아래 우리들의 자기 결정권이 박탈당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지난 12일 화려하게 막을 내린 CES(Consumer Elektronics Show) 2024를 본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