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편의점 채널 의존 몰락 원인”
소비자 점접·수출 늘여야…“다양한 원재료 허가해야”
4일 서울 영등포구 비어바나에서 만난 이인기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우리나라 K수제맥주 산업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에 손사래를 쳤다. 우리나라 수제맥주 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시기인 2014년을 기점으로 할 때, 적어도 향후 10년 뒤인 2034년은 돼야 제대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장은 “미국 등 외국 사례를 보면 수제맥주 회사가 진짜 가치를 평가받기까지 통상 20년이 걸렸다”며 “우리나라 업체들도 그 정도 장기적으로 봐야 제대로 된 기업가치나 시장 규모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 수제맥주 업계가 현재 위기인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고 했다. 이 협회장은 “경기 침체로 인해, 개인별 가처분소득(소비여력)이 줄고 수제맥주뿐 아니라 사실 와인이나 위스키업체 모두 속사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편의점 시장에만 의존한 탓 커
이 협회장은 주류시장에서 유독 수제맥주가 지지부진한 것은 그동안 편의점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편의점은 ‘수입맥주 4캔에 1만 원’을 대체할 상품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 수제맥주를 택했다”며 “이에 일부 덩치가 큰 수제맥주회사들이 편의점의 4캔에 1만원 가격정책에 맞춰 납품을 했고, 실제로 판매가 잘돼 마치 성공 신화처럼 여겨졌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패착이 됐다. 당시 약 6개 수제맥주회사가 편의점 매대를 놓고 유혈 경쟁을 했는데, 코로나19가 끝나니 지금 편의점은 과거 수입맥주 자리를 수제맥주가 대체한 것처럼 또 다른 대체재를 찾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협회장은 “일부 회사들이 편의점만 믿고 과도하게 투자를 해왔는데 시장이 급격히 줄어드니 마치 전체 시장이 안 좋아보이게 됐다”며 “편의점에서 수제맥주가 한창 판매가 잘 됐을 때 다른 판로도 키웠어야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대기업까지 뛰어들며 전체 질 낮아져
이 협회장은 편의점 등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대기업 주류회사까지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체적으로 퀄리티(질)가 낮아진 것도 쇠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대기업 주류회사들이 하위 브랜드로 만들거나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수제맥주를 선보였는데, 사실 소비자는 이게 대기업 하위 브랜드인지 수제맥주회사 제품인지 모르지 않나”며 “결과적으로 편의점 냉장고 속 맥주가 진짜 수제맥주인지 구분도 안 되고 ‘맛없는 맥주’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잘 팔리는 제품이다 싶으면 대기업이 OEM을 통해 생산량을 급격히 늘린 것도 문제가 됐다”며 “대기업 OEM 생산은 최소 주문량이 30만 캔 정도인데, 소규모 양조장의 경우 수요 예측을 잘못했다 재고를 다 떠안게 되면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협회장은 그러면서도 “편의점 맥주가 망했지, 우리나라 수제맥주가 다 망한 것은 아니다”라며 “전국 170개 넘는 양조장이 있는데, 편의점에 납품하는 회사는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0년 후 평가 가능...시장 성숙 전 IPO 안돼
이 협회장은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가치는 앞으로 10년 뒤인 2034년에야 비로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제맥주 시장이 성숙한 미국만 봐도, 전체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을 많게는 20%까지 볼 수 있는데 이는 작지 않은 규모”라며 “우리나라 맥주 시장이 4조 원이라고 가정할 때 20%면 8000억 원”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8000억 원 시장이라도 코스닥 상장 가능 회사는 4~5개정도 나올 사이즈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상장하는 회사가 나와버렸다”며 “시장 생태계가 미성숙한데, 특이한 방법을 써서 상장을 하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수제맥주 키우려면 소비자 접점·수출 늘려야
그렇다면 업계는 어떤 복안을 마련해야 할까. 이 협회장은 “향후 10년 후를 위해 수제맥주회사들이 가장 근본적인 맛을 지키고 편의점 외에 소비자 접점을 늘리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테이스팅 클래스, 수제맥주 축제 등을 통해 국내 소비자를 공략하는 한편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막걸리만 봐도) 발효의 민족이다 보니 단기간에 양조장도 실력이 크게 늘었고, 세계적으로 견줘도 품질이 좋다”고 자부했다. 이에 K콘텐츠 등으로 한국 술에 비교적 관심이 큰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부터 수출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협회장은 마지막으로 “한국만의 색을 내기 위해 지역 특산물이 들어간 맥주를 개발하는 것도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맥주는 법적으로 쓸 수 있는 원재료가 한정돼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다양한 원료를 쓸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