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등 대서양과 걸프만·동아시아로 나뉘어
‘수입 의존’ 한국 정유사, 마진 악영향 우려
나프타 아시아 가격, 2년래 최고치
수에즈운하관리청장 “이러한 위기는 처음”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각국 유조선들이 홍해 위협을 피하고자 수에즈 운하를 통한 석유·가스 수송을 줄이면서 글로벌 석유 시장이 미국·유럽 등 대서양 지역과 걸프만·인도양·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무역 지역으로 나뉘고 있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는 우회로가 있기는 하지만 늘어난 거리 만큼 운임 비용이 비싸지면서 가급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서 원유를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한 것이다.
원유 거래자들은 유럽의 일부 정유업체가 지난달 이라크산 원유를 구매하는 대신 북해 및 가이아나산 원유를 사들였다고 전했다. 아시아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산 원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1월 중순 현물 가격이 급등했다. 반면 카자흐스탄에서 아시아로의 제품 이동은 빠르게 감소했다.
원자재 물류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 선적량은 전달 대비 3분의 1 이상 급감했다. 이러한 분열이 영구적이지는 않겠지만 현재 한국과 인도 등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공급원 다변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급변하는 시장 역학 관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제한돼 결과적으로 마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짚었다.
석유 제품 시장에서는 유럽으로 향하는 인도 및 중동산 경유·항공유와 아시아로 향하는 유럽산 연료유·나프타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석유화학 연료인 나프타의 아시아 가격은 지난주 유럽에서 조달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에 약 2년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빅토르 카토나 케플러 수석 원유 분석가는 “물류적으로 더 쉬운 화물로의 전환은 상업적으로 의미 있다”며 “홍해 혼란으로 인해 해상 운임이 계속 상승하는 한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공급 안정과 수익 극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오바니 스타우노보 UBS 애널리스트는 “원유 공급원 다각화는 여전히 가능하지만 전보다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며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면 정유사의 마진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물류 요충지이자 주요 원유 수송로인 수에즈운하의 통항료 매출도 물동량 감소로 반 토막 났다. 지난달 수에즈운하의 통항료 수입은 4억2800만 달러(약 5699억 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의 8억400만 달러 대비 절반 수준으로 급감한 셈이다.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선박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1%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오사마 라비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 청장은 “수에즈운하가 이러한 위기에 휘말린 것은 처음”이라며 “우리는 매달, 매년 항상 성장했는데 이렇게 후퇴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