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숙 수협은행장 “여성도 틀 깨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금융 유리천장 뚫은 여성리더①]

입력 2024-03-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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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풍(女風)’, ‘우먼파워(Woman Power)’.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활약상을 일컫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남성들만의 분야로 여겨온 여성 금기 분야에 진출한 여성이나 리더십을 지닌 여성 지도자의 사회적 영향력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대표적인 업권이 금융업이다. ‘방탄유리’라 불릴 정도로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최초’ ‘1호’ 타이틀을 단 여성 임원과 부서장 등 여성 인재의 활약으로 견고했던 틀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본지는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가 강한 금융권에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유리천장을 깬 여성 리더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성공 과정과 2030 여성 금융인 후배들에게 전하는 솔직 담백한 조언을 담고자 한다.

45년 수협인…여성 최초 기록제조기
대출 등 여신업무 주지 않았던 시절
‘걸어다니는 규정집’으로 끊임없이 노력

“저 친구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해?”

수많은 ‘여성 최초’란 타이틀을 거머쥔 강신숙 Sh수협은행장의 여정은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남자 후배의 승진은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45년 수협인으로서 수많은 ‘여성 최초’ 타이틀을 휩쓸어 ‘기록제조기’로 불릴 수 있게 만든 원천이기도 했다. 1979년 강 행장이 수협중앙회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남녀차별이 만연한 시대였다.

강 행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인사하고, 차 따라주는 하나의 전시 역할을 했던 것 같다”면서 “나 역시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100만 원 받았습니다’ 이런 말만 앵무새처럼 했다. 여성에게는 대출 등 여신업무도 주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 말하는 금융권의 ‘유리천장’보다 훨씬 거대한 ‘유리 장벽’이 느껴질 만큼 남성 우월적인 문화가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주요 업무를 맡지 못하다 보니 승진도 자연스레 밀렸다. 강 행장은 남자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며 남몰래 규정집을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업무를 마치면 도서관으로 퇴근하는 것은 물론, 약속이 있을 때도 규정집을 들고 다니며 외웠다. 부족한 실무를 익히기 위해 상환된 대출서류들을 파헤치고 밤을 새우기도 일쑤였다. 남들보다 어렵게 배울 수밖에 없었던 만큼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고 했다.

‘걸어 다니는 규정집’으로 불릴 정도로 수협의 각종 규정과 협동조합법 등을 암기한 강 행장에게 기회가 왔다. 노력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던 지점장이 대출업무를 준 것. 그는 “여신업무를 맡을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평소 철저한 준비가 돼 있었기에 입사 초기 어려움을 극복함과 동시에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며 한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고객낙루’실천…오금동지점장 등 15분기 업적평가 1등

강 행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최초’는 2001년 수협은행 최초 여성 지점장이 됐을 때다. 처음으로 여성 지점장이 됐다는 상징성도 있지만 이 시기가 고객, 직원들과 함께 노력해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실적 악화로 폐쇄 위기에 놓였던 오금동지점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첫 여성 지점장이라는 화려한 직함을 달고 보임됐는데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막막함이 컸다. 이를 극복하고자 마인드를 바꿨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직원들과 함께 한번 해보자, 작은 것부터 바꿔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처음부터 시작했다.

강 행장은 ‘고객 낙루’를 고민했다. 고객 낙루는 고객이 눈물을 흘릴 때까지 감동을 줘야 한다는 마케팅 용어다. 그는 “어렸을 때는 고객을 보며 저 분이 예금을 하는구나 이해하는 정도였다면, 일이 조금 손에 익었을 때에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부행장까지 오르고 나서는 고객 낙루에 더욱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수협은행을 좋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고객과 직원들 모두 변화가 생겼다. 직원들은 자신감이 생겼고, 고객들은 오히려 새로운 고객을 추천해줬다. 그 결과 강 행장은 오금동 지점에서 8분기 연속, 뒤이은 서초동 지점에서는 7분기 연속, 총 15분기 연속 업적 평가 1등이라는 현재도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다.

결국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으로 입증한 현장경험과 영업력, 디테일한 감성과 친화력은 직원 1800명을 이끄는 수협은행의 첫 번째 여성 은행장 탄생의 배경이 됐다

강 행장은 여성으로서의 강점으로 디테일이 강하고 촉이 좋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고객 얼굴만 봐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딱 알 수 있다. 금융자산에 대해 여성들이 좀 더 섬세하고 디테일 쪽에 강하기 때문에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거기다가 전문성까지 확보하면 ‘완벽한 지점장’이 될 수 있다. 여성 지점장들이 실적이 더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지난해에도 그의 촉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강 행장의 비이자 강화 드라이브가 적중한 결과 수협은행의 연간 비이자이익이 1년 새 두 배가량 증가한 것. 2022년 말 기준 466억 원 수준이던 은행의 비이자이익이 지난해 말 852억 원으로 급증했다. 강 행장이 임기 초부터 은행을 통한 보험 영업인 방카슈랑스와 카드, 펀드 영업 등을 강화한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협중앙회와의 원만한 소통 역시 강 행장의 보이지 않는 성과로 통한다. 강 행장이 간담회나 행사장에 등장하면 그 일대 분위기가 화사해진다. 항상 환하게 웃으며 다른 행장들과 인사하는 그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그는 “아무리 무거운 주제가 있어도 미소를 띠고 얘기하면 분위기가 밝아지는 건 있는 것 같다. 여성만의 특유의 감성이랄까. 사람들을 포용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에게 조언 “결혼‧출산 이전의 자긍심을 되찾을 것”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라고 조언했다. 자기 틀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조직원들과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출산 이전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되찾을 것을 강조했다.

강 행장은 “여성들은 육아와 가정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사회와 남편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아이를 맡긴 후에는 빨리 가정에서 탈피해야 한다. 현직으로 복귀했을 때는 결혼 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 역시 1남1녀의 ‘워킹맘’으로서 수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 동료와 가족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강 행장은 결혼과 출산 후의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계획을 세우듯 복귀하면 몇 년 뒤 어느 시점에 어떤 자리까지 오르겠다는 목표 설정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랜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목표를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며 장애가 없도록 가정과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우자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강 행장은 “당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그래야 가정과 일이 부딪쳤을 때 원활하게 조율할 수 있다. 남편에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오르는 데 당신이 큰 기여를 했다고 얘기하곤 한다”며 웃음 지었다.

한편, 강 행장이 올해 경영상 꼽은 0순위 과제는 수협은행의 리스크 관리다. 그는 “올해는 건전성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소상공인이나 어업인들이 어려워하는 문제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내실을 기하는 데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인수합병(M&A) 계획도 밝혔다. 강 행장은 “우리 자본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좋은 매물이 나오는 것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내실을 좀 더 기하고 자본 확충에 우려하는 바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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