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장비, 10년 지나도 고급 칩 생산에 활용 가능
“미국, 화웨이 첨단 반도체 출시에 동맹국 규제 강화 압박”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들이 중고 기계를 2차 시장에 내놓는 대신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며 “이들은 장비가 다른 나라(중국, 러시아) 손에 들어가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중국 바이어들이 러시아에 장비를 팔고 있어 이로 인한 미국 측의 반발도 두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이번 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장비 보관이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와 대러 제재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다고 FT는 강조했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미국이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막고자 관련 수출을 통제한 2022년부터 자사의 중고 장비들을 보관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 화웨이와 SMIC가 미국 제재에도 첨단 반도체를 선보이자 미국은 최근 들어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 규제를 강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기업들의 중고 장비 수출까지 압박하는 이유는 해당 장비가 여전히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한국 스마트폰·인공지능(AI)용 최첨단 반도체 생산업체에 더는 필요 없는 장비가 중국 공장에서 새 단장 후 다시 설치될 수 있으며, 이는 통상 미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낮은 사양의 반도체 생산에 사용된다”며 “그러나 메모리칩에 트랜지스터를 배치하는 데 사용되는 노광장비는 10년 된 중고 장비라고 해도 수리를 마치면 고급 반도체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부터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 규제에 관해 무기한 유예를 받는 터라 미국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중국 공장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으로의 장비 반입 허용을 철회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그레고리 앨런 와드화니 AI·첨단기술 센터 국장은 “삼성이나 SK하이닉스 장비가 SMIC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같은 제재를 받는 중국 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한국도 알고 있다”며 “이는 한미 관계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