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면의 날 기념 심포지엄…“환경 전반적 변화 필요”
“더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을 권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승수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5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에서 개최된 ‘대한수면연구학회 세계 수면의 날 심포지엄’에서 국내 소아·청소년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면은 신체와 정신에 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가 함께 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전 세계 수면 연구자들은 한국을 포함한 극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극단적으로 수면 시간이 짧은 지역’으로 꼽는다.
학계는 13~18세에게 하루 8~10시간의 수면을 권장하지만, 국내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국 150개 중고등학교 학생 2만6393명의 수면 시간을 조사한 결과, 주중 평균 수면 시간은 6.7시간으로 파악됐다. 중학생은 7.3시간으로 평균을 웃돌았지만, 일반계 고등학생은 5.8시간으로 짧았다.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 못한 청소년은 신체와 정신 건강을 모두 잃을 수 있다. 수면이 뇌 발달과 정신, 행동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면장애는 대뇌의 표면에 위치하는 신경세포의 집합인 ‘뇌피질’ 두께를 감소시킨다. 뇌피질이 감소하면 집중이나 감정 조절 능력이 저하할 수 있다.
정신건강 역시 수면 부족으로 저해된다. 수면량은 감정과 행동 문제의 강력한 예측 인자로 지목되는데, 건강하지 못한 수면 행태는 ‘건강위험행동’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수면장애나 수면 부족이 있는 사람은 수면 이외에도 음주, 흡연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가지기 쉽단 의미다.
김 교수는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체시계나 호르몬 분비 등 생리적인 문제에 따라 수면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수면을 방해하는 환경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라며 “빛 공해, 이른 등교 시간 과제 및 학원, 아르바이트 등이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라고 설명했다.
단편적인 정책으로는 수면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 경기도는 청소년들의 수면 시간을 늘리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2014년부터 관내 초중고등학교에 오전 9시 등교제를 도입했다. 제도 시행 직후 경기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수면 시간은 초등학생이 7분, 중학생이 17분, 고등학생이 31분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 2019년 연구에서는 수면 시간이 8.1시간에서 7.3시간으로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김 교수는 “등교 시간이 늦어진 만큼, 밤에 잠드는 시간도 더 늦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라며 “단순한 접근으로는 수면 시간을 늘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 구성원들이 수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환경 변화를 병행해야 수면 습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은 세계수면학회가 건강한 수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한 ‘세계 수면의 날’이다. 학회는 ‘수면 건강 선언문’을 통해 “충분한 수면은 인간의 기본 권리이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수면 부족현상은 모든 연령에서 확산하고 있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라며 “수면을 건강의 필수 요소로 인식하고, 자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