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 손해봐도 보험 계약 깨고 급전 대출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약관대출 규모가 지난해 70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적립금 전부를 받지 못해 손해지만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환급금을 미리 땡겨서 돈을 융통해야 할 정도로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생명·손해보험사의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71조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말(68조 원)보다 3조 원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보험약관대출은 보험 보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해지 환급금의 일부를 미리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다. 보험사나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해지 환급금의 50~95%까지 받을 수 있다. 보장이 필요할 때 보험료를 내고도 제대로 된 보험금을 받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경기 침체에 자금줄이 막힌 가입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만큼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자들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전일 발표한 ‘국내 보험사 대출채권의 잠재 위험 요인 점검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차주 수 기준 보험사의 다중채무자 비중은 32.1%였다. 저축은행(38.3%), 카드사(33.7%)보다는 낮으나 은행(10.4%), 캐피털(28.7%), 상호금융(14.8%)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으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보험사 다중채무자의 경우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약 4300만 원에 달했다. 2금융권 중 상호금융(7500만 원)을 제외하고 최고 수준이었다. 고금리에 부실 가능성이 큰 취약 차주가 보험사에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 보험업권의 채무 불이행자 신용 회복률은 38.1%로 은행(43.8%), 상호금융(57.7%)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최후의 보루’인 보험을 깨는 사례도 늘었다. 생보사와 손보사 합계 보험 해약 건수는 2021년 1146만6000건에서 2022년 1165만4000건, 지난해 1292만2000건으로 증가세다.
이 선임연구원은 “보험약관대출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데다 절차가 간소하고 은행권과 금리차가 크지 않아 늘어난 영향도 있다”며 “다만, 가계대출 차주 중 다중채무자, 저신용등급층, 저소득층 등 취약 차주 비중이 작지 않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원활하게 대출을 내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 대출을 내주지 않는 분위기가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오 의원은 “보험약관대출과 보험 해약의 증가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서민정책금융상품 공급 확대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