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이병헌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을 관통하는 대사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말하고 싶은 건 대사로 다 썼다. 어느 순간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렇게 싸웠지'라는 생각도 든다"라며 "초반부는 원작에 있는 대사들을 많이 활용했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내가 거의 다 썼다"라고 밝혔다.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박지독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2019년 네이버웹툰 '지상최대공모전' 장려상 수상작이다.
이 감독은 "웹툰을 처음 봤을 때, 완결이 안 된 상태였다. 처음엔 외모 등 편견에 관한 이야기구나 싶었는데, 외계인이 등장하면서 주제가 확장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세계관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재미가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극한직업'에 이어 닭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데 대해 이 감독은 "닭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세계관은 없다"라며 웃었다.
그는 "소재를 찾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웹툰을 많이 접했다. 제작사에서 내게 이 작품을 그냥 한 번 보라고 알려줬다. 날 상대로 낚시한 것 같다"라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어쩔 수 없이 다음 화를 계속 넘기고 있더라. 알면 알수록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라며 원작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 그는 "만화를 워낙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바빠서 웹툰을 많이 못 봤다. 근데 조금 재미있겠다 싶으면 판권이 다 팔렸더라. 요즘에는 웹툰 나오기도 전에 설정만 듣고 사간다고 하더라. 다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닭강정'은 매회 30분 내외 분량으로 호흡이 짧다. 이 감독은 "우선 이 이야기를 길게 할 자신이 없었다. 확실히 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능성을 놓고 제작사와 고민했다"라며 "결국 숏폼으로 만들어서 가볍게 보고, 늘어지지 않게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닭강정'은 인간이 닭강정으로 변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드라마'라는 호평과 함께 터무니없는 개연성으로 호불호가 뚜렷하게 나뉘는 있는 상황이다. 이병헌식 코미디에 대한 회의를 표하는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 분들은 이유가 각자 다르더라"라며 "원래 제 작품을 깊게 분석하는 분들이 많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재미를 느꼈는지 깊게 분석한 분도 있더라. 너무 감사하다"라며 "어디 가둬 놓고 이런 것만 계속 만들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댓글을 보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병헌식 코미디가 익숙해졌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아! 이제 읽혔구나 싶다. 이 재밌는 작품을 하면서 내 이름이 걸림돌이 된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 너무 작품을 많이 했나 싶기도 하다"라며 "저의 코미디를 좋아해 주는 분들에게는 조금 죄송하지만, 뒤에 나올 작품들은 이제 그런 톤은 아니라서 코미디 작가로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승룡과 안재홍 등 주연 배우들의 호흡에 대해서는 "두 명이지만 내겐 어벤저스 느낌이다. 색깔은 다르지만, 각자의 코미디를 굉장히 잘하는 배우들"이라며 "또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현장에서 내가 되게 편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감독은 김은숙 작가와 함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를 촬영 중이다. 김우빈과 수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그는 "이제 촬영을 시작했다. 너무 초반이라 아직은 공부하듯이 하고 있다"라며 대본이 너무 재밌다. 모두가 재밌게 작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