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발암물질 ‘포름알데히드’ 검출된 고온테스트실 업무도
2심 재판부 “상당인과관계 있다고 추단할 수 있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14년간 근무한 뒤 백혈병을 진단받고 30대 나이로 숨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A씨의 유족이 산재소송에서 승소했다. 1심 패소를 뒤집은 결과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4-1행정부(이승련, 이광만, 정선재 판사)는 20일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A씨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내지 사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22년 4월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1심 패소 판결을 뒤집고 A씨 사망과 업무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한 유형일 경우, 연구 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질병과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게 현재 의학 수준에서 곤란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A씨에게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백혈병이 생겼고 가족력도 없어 업무환경이 질병 발병과 악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씨는 2001년 1월 20대 나이로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에 입사해 2015년 3월까지 수원사업장에서만 14년 2개월간 근무했다. 만 39세가 되던 2015년 백혈병을 진단받고 사망했다.
A씨의 주업무는 TV 소프트웨어의 불량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완제품으로 조립된 TV가 넘어오면 책상에 2~3대의 TV를 올려두고 시간별 재생 상태를 확인한 뒤 소프트웨어를 통한 동작 가이드 등을 검수했다.
A씨는 PDP, LCD, LED 등 디스플레이 패널 옆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A씨 사망 뒤인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조사했는데, A씨와 비슷한 요건에서 근무한 3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측정한 결과 TV에서 발생한 18.5마이크로테슬라(uT)의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국제암연구소(IARC)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0.2uT~1.0uT 이상으로 노출될 경우 암 발생 위험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할 정도로 높게 나타난다”면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측정한 18.5uT가 국제암연구소 연구의 노출값을 크게 상회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해당 수치가 근로자 3명을 대상으로 5시간 30분 동안 진행한 한 차례의 측정결과인 만큼, 해당 사업장에서 14년간 근무한 A씨의 누적 노출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2010년부터 50도 전후의 고온에서 TV 소프트웨어 결함을 검수하는 업무를 주로 맡은 점도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고온 검수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챔버 4대가 가동되는 약 20평 규모의 시험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산보연 조사 결과 이 공간에서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포름알데히드는 1급 발암물질이다.
산보연은 시험실의 포름알데히드 노출 수준이 0.005ppm으로 위험노출기준인 0.3ppm보다 낮다고 보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A씨의 근무 기간과 업무 양상을 고려했을 때 그보다 많은 포름알데히드에 장기간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A씨와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담당한 동료직원 B씨의 증언도 판단 준거로 삼았다. 동료직원 B씨는 재판 과정에서 “고온테스트실은 환기가 되지 않아 공기가 탁했고, 엔지니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될 때까지 시험실에 출입해야한다. 한 번 들어가면 최소 20~30분 정도는 체류하게 되고 일정이 촉박해지면 출입빈도와 체류시간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2심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부쳐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첨단산업의 불확실한 위험을 대비해 근로자의 희생을 보상하는 동시에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사회적 기능을 지닌 점을 고려했다"는 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