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vs 22㎝
전혀 다른 크기의 두 공의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그것도 저마다의 어마어마한 스타를 내세우면서 말이죠.
봄이 오길 그토록 바랐던 팬들의 바람이 넘치게 이뤄졌는데요. 정말 따스한 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기 구기 종목의 넘볼 수 없는 양대산맥 축구와 야구가 3월, 정식으로 시즌을 시작했는데요. 2024시즌은 시작 전부터 이미 기대치를 초과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장외 대결은 시작되었거든요.
프로축구 FC 서울은 무려 프리미어리그(PL)에서 뛰던 제시 린가드를 영입했고, 프로야구 한화이글스는 미국으로 떠났던 효자 소년가장 류현진을 다시 모셔왔습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찌를듯한 그 이름, 린가드와 류현진이 한국 축구와 야구에 안착했다는 소식은 겨울 끝자락을 불태웠죠.
흔히들 국가대표 경기는 축구, 프로경기는 야구로 그 인기를 설명하곤 하는데요. 축구 국가대표팀은 ‘붉은 악마’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포터즈를 기반으로 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다양한 경기에서 수많은 관중을 불러오는 초 인기 스포츠 경기입니다. 중계 채널부터 상대 모두가 관심사고요.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치킨집에 불이 나고, 단체로 시청할 수 있는 음식점과 술집들은 이미 자리가 꽉꽉 차죠.
하지만 프로경기의 관중 동원 수는 프로야구가 가장 꼭대기에 있다는 데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요. 월요일 빼고 열리는 엄청난 경기 수에 힘입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관중이 모이죠. 거기다 부모나 자녀를, 또 그 자녀가 다시 자녀를 전도(?)하는 ‘팬 가업’을 물려받는 스포츠 경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 그 양상이 조금 바뀌고 있는데요. 프로축구의 인기가 요즘 심상치 않기 때문이죠. 사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시즌부터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산하의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 ‘K리그1(이하 K리그)’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 최상위 리그이기도 한데요. 야구보다는 못한 관중동원력으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뒤바뀐 모습을 보여줬죠. 2023년 K리그는 244만7147명이라는 관중을 동원했는데요. 2부리그까지 합치면 300만 관중을 돌파했죠. 사상 첫 기록이었습니다. K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1만733명으로 2022년 4800명 대비 2배나 늘어난 숫자죠.
특히 시즌 막판 수원 삼성의 다이렉트 강등과 수원FC·부산, 강원·김포의 1부 잔류를 위한 ‘멸망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요. 팬들 모두 ‘멸망전’만 같은 경기 동원력이 됐으면 좋겠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정말 이루어지고 있죠. 1일 개막한 K리그, 광주FC의 개막전 홈경기 티켓 7813장이 오픈 2분 30초 만에 매진됐고요. 대구FC가 홈 개막전 또한 전석이 다 팔렸습니다. 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전국 6개 구장에서 펼쳐진 2024 K리그1 개막 라운드에 총 9만 4460명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는데요. 이는 역대 개막 라운드 관중 수 3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K리그 흥행은 현재 FC 서울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일명 ‘린가드 효과’로 K리그를 알지 못하는 이들도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있습니다. 10일 홈 개막전에는 프로축구연맹 공식 집계 기준 총 5만 1670명의 관중을 동원했는데요. 이는 한 경기 역대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죠.
다만 생각보다 린가드의 기량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운데요. 16일 3라운드 홈 경기를 마친 뒤 김기동 FC 서울 감독은 린가드를 향해 “린가드를 다시 교체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면서 “몇 분 뛰지 않는 선수가 설렁설렁하고 몸싸움도 안 한다. 풀타임을 소화하는 선수들보다 덜 뛴다면 축구선수라 할 수 없다”라고 질타하기도 했죠.
프로야구, KBO리그도 이에 뒤질 수 없습니다. 사실 프로야구는 최근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에 이어 2023 월드 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실망스러운 성적과 태도를 보여준 데다, 선수와 관계자의 범죄 관련 소식도 연이어 들렸기 때문인데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2년 관중 수가 급격히 줄어들며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죠. 2023년 시즌이 고비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프로야구는 깜짝 반전에 나섰는데요. 이 반전에도 스타가 등장했죠. 한국 프로야구에서 데뷔해 미국 메이저리그(MLB)로 직행한 최초의 선수, 바로 류현진입니다.
한 두 해 정도 MLB에 더 머물 것으로 예상했던 류현진은 장기 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요. “힘이 남아 있을 때 돌아오고 싶다”, “은퇴는 한화에서 할 것”이라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말이죠. 흔히들 말합니다. 야구는 낭만이라고. 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그 낭만을 완성하고야 말았습니다.
한화 이글스는 류현진과 8년 총액 170억 원(옵트아웃 포함·세부 옵트아웃 내용 양측 합의 하에 비공개)에 계약했는데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역대 최고 수준이죠. 하지만 이 또한 효자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에 벌어다 준 돈에 비하면 약소합니다. 2012년 LA 다저스는 FA가 아닌 류현진을 데려가는 대신 보상금 성격의 포스팅 금액 2573만7737달러(약 344억4000만 원)를 한화에 지급했기 때문이죠.
류현진이 돌아왔다는 흥분감은 비단 한화 이글스 팬에게만 국한되진 않았는데요. MLB 사이영상 후보까지 올랐던 최고 투수의 귀환을 모두 두 팔 벌려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그의 컴백이 프로야구 흥행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죠.
거기다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류현진의 모습은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었는데요. 류현진이 자랑하는 ‘칼제구’의 날카로움이 더 매서워졌죠. 특히 12일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시범경기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는데요. 타이거즈의 소크라테스 브리토와의 대결이 압권이었죠.
KBO리그 3년 차인 소크라테스는 지난 시즌 20홈런을 기록한 최고의 외국인 타자인데요. 류현진은 소크라테스를 단 3개의 공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삼구삼진을 목청껏 외치던 팬들도 할 말을 잃었는데요. 류현진은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커브, 속구, 속구를 던졌고, 이 3개의 공은 모두 높낮이만 달랐을 뿐 모두 보더라인 바깥에만 아슬하게 걸쳤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로 선에 팬들은 “이것은 탕후루존”, “소크라테스에게 탕후루 먹여준 류현진”이라고 평가했죠. ‘류현진 효과’에 한화 이글스는 시범경기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한화 이글스 팬들이 매년 외치던 “올해는 다르다”가 정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엄청난 희망을 품게 했죠.
류현진이 등판하는 개막전은 무려 지난 시즌 우승팀 LG 트윈스와의 잠실야구장 경기인데요. 모두의 예상대로 해당 개막전은 매진됐습니다. 일반 예매 이전 LG 트윈스 팬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예매 때 이미 동난 상황이었는데요. 한화 이글스 팬들은 그 순간 만큼은 LG 트윈스 회원이 되어 예매했다는 후기도 쏟아졌습니다.
잠실야구장뿐 아니라 23일 프로야구 개막전 경기장은 모두 만원 관중이 들어찰 전망인데요. 현재 서울시리즈 참석차 한국을 찾은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감탄한 프로야구 응원을 제대로 보여줄 차례입니다.
현재 K리그는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국가대항전인 A매치 기간이기 때문이죠. 30일 주말부터 다시 펼쳐질 축구 또한 더 힘찬 응원을 보낼 준비를 마쳤습니다.
당신이 응원할 공의 크기가 무엇이든, 그 공이 누빌 경기장에 쏟아낼 에너지는 감당 못 할 크기로 한번 만들어 볼까요? 자,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