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일상의 타성 깨는 ‘관점의 전환’

입력 2024-04-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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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남 영화평론가ㆍ계명대 교수

<머니볼(Money Ball), 베넷 밀러 감독, 2011년作>

개인에게 있어서나 기업, 관료조직이나 국가 차원을 막론하고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굳어진 관습이나 타성을 깨고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점진적인 개선보다 한순간에 판을 뒤집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주는 충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혁명은 강력한 만큼 고혹적이다. 인간은 낯선 것(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 미지의 세계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방어기제의 작동은 인간을 편협에 가둔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은 더 큰 ‘호기심’을 가지고 과감하게 나아가고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다.

영화 ‘머니볼(Money Ball)’(2011)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소설 원작을 각색해 제작됐다. 소설은 2003년 출간 이래 8년 연속 베스트셀러였으며, 미국 최고경영자들의 필독서였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의 단장이었던 빌리 빈(Billy Beane)을 모델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서술됐다.

그렇다면 빌리 빈은 누구인가? 고교생 당시 야구선수로 ‘투/타/공/수/주’에 모두 능한 ‘5툴(five tools)’에다가 명석한 두뇌까지 겸비한 최고의 유망주였다. 명문 구단의 스카우트 제의(돈)와 스탠퍼드대 4년 전액 장학생(학업)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야구(돈)를 선택했다. 198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 6시즌 동안 4개 팀을 전전하며 총 148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2할1푼9리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은퇴했다. 그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의 전력분석원에서 단장 보좌관, 단장(1998~2015), 부사장(2016~2022), 수석고문(2022~현재)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최고의 유망주에서 형편없는 선수였다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경영자로 드라마 같은 인생을 이어왔다.

빌리 빈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자유 민주주의라고 하는 씨줄과 자본주의라고 하는 날줄로 촘촘하게 짜인 매우 공교로운 지형도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는 만민이 법 앞에 평등, 균등한 기회라고 하는 달콤한 약속을 하고 있지만, 후자는 승자독식 게임의 냉혹한 전장이 세상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돈으로 기회를 사고, 돈으로 불행을 막고, 돈으로 그 밖의 무엇이든 한다.

빌리 빈은 기존의 야구계가 돈을 앞세워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과 방식, 모든 관습과 편견을 거부하며 새로운 기준, 새로운 안목,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기존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사례는 빌리 빈 자신이었다. 그는 저평가된 가치 발굴, 저비용 고효율을 창출했다. 야구는 기록경기다. 그들도 데이터를 본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기록은 타율, 홈런, 도루 등 개인기록 위주였다. 빌리 빈이 주목한 것은 어디·무엇에 방점을 두고 보느냐였다.

그는 출루율(선구안), 팀 기여도 등 남들이 주목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남들이 스타플레이어 개개인의 기록을 주목할 때, 그는 부족하고 문제 있지만 팀에 녹아들었을 때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줄 선수에 주목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측정, 통념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생각, 저평가된 가치를 찾는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갔으며 그것이 그를 신화적 인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 작품의 미덕은 우리의 일상이 관습과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도록 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삶의 모든 게임, 앞으로 자신만의 인생에서 해 나가야만 할 수많은 선택에 임하는 자세와 방식에 대해 근원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점검해보라고 한다. 이제 총선도 끝났다. 온 국민의 집단지성이 나라의 면모를 미래지향적으로 혁신해 갈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줬다. 승자도 패자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롭게 자기 혁신을 이루어갈 때다. 삶도 스포츠도 정치 역시도 영원한 승자나 패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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