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는 “오히려 업무 가중돼” 지적도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가 시행된 지 두 달여가 지난 가운데 학교 현장에서는 본래 취지와 달리 되레 학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에서 교사의 행정 업무 등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
13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교육부는 학교폭력 사안 조사에 대한 교사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써 전국 학교에서 학폭 사안이 발생하면 외부 조사관이 학교에 투입돼 조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서울을 포함해 전북 등 일부 교육청에서는 교사 업무 부담이 더 커진다는 지적에 따라 조사관 개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바꿨다.
서울의 퇴직 교원 출신 학폭조사관 A 씨는 “교사들에게 학폭 조사관의 개입이 더 부담이고 귀찮은 일”이라며 “교사들에게는 학폭 조사관들의 학교 방문 시간을 조율하고, 공문을 발송하는 등 해야 하는 일이 새롭게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안 조사를 할 독립적인 공간도 부족해, 학교 사정에 따라 비좁거나 적당하지 않은 장소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교폭력 사안 조사에 부담을 느껴 두 달여 만에 조사관 활동을 그만둔 사례도 있다고 했다.
A 씨는 “얼마 전 동료 조사관으로부터 조사관 활동이 부담스러워서 그만둘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다툼도 폭력으로 규정지어버리는 상황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진짜 심각한 폭력은 경찰에서 조사하도록 하고,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퇴직 교원 출신 학폭조사관 B 씨는 “교사들은 사안 조사 한번 할 때마다 외부인인 조사관에 대한 성범죄 이력 조회 등을 거쳐야 하고, 사안 조사와 관련한 자료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교사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다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 등 일부 교육청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은 교사뿐만 아니라 부장교사, 교감, 교장 등 학교 차원에서 해결하고, 그게 어려운 경우에는 교육청에 사안 접수해서 처리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을 담당하고 있다는 교사 C 씨는 “최근 학교에서 경미한 학폭 사안이 발생했는데, 조사관을 부르고 약속 잡고 하는 게 더 귀찮은 일이라 학교에서 사안 처리를 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조사관이 온다고 해서 특별히 더 나올 것도 없는 아주 경미한 사안이었다. 그냥 학생 이야기만 들어보면 되는 사안은 직접 처리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다만 그러면서도 학교폭력 사안 조사 과정에서 교사가 마주할 수 있는 악성 민원 가능성 등은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폭력 가·피해 학생을 조사하는 경우 교사는 가·피해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공격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학폭 조사관이 사안 조사를 하면 공정하게 조사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니 교사가 이런 문제는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 업무 부담을 줄이려면 아예 학교폭력 조사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전담 조사관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 지역 교사 D 씨는 “교사 입장에서는 학폭 조사관이 개입해 사안 조사를 한 이후에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면서 “사안 조사뿐만 아니라 이후 아예 마무리하는 단계까지 조사관이 담당하게 하면 교사 부담이 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