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필수의료·지방의료 위기 원인 ‘저수가’ 지목…‘생중계’ 요청에 시작부터 마찰
2025년도 수가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혼란이 지속 중인 가운데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수가 인상률을 두고 견해차를 좁히기 어려워 보여서다. 의사들은 ‘저수가’ 문제를 필수의료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어, 예년보다 팽팽한 갈등이 예상된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부터 건강보험공단 수가협상단과 의약단체장 단체들은 수가협상을 위한 2차 회의를 진행한다. 수가협상은 공단이 의료 서비스 공급자들과 내년도 건강보험 진료 시 적용할 요양급여비를 조율하는 자리로, 의협을 비롯해 대한병원협회(병협)·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대한조산협회 등 6개 의료계 단체가 참여한다.
올해 수가협상은 예년보다 순탄치 않은 분위기다. 정부와 의협이 내년도 의대 증원과 관련해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한 상황에서 수가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의협은 고질적인 저수가 기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의사 수가 증가해도 필수과 기피 현상과 지방의료 붕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의협 측은 협상 초반부터 과감한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수가협상 1차 회의가 진행된 16일 의협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긴급 회견을 열고 정부를 향해 내년도 수가를 최소 10% 인상하고, 수가 협상 회의 과정을 전 국민에게 실시간 생중계하라고 촉구했다.
회견에서 임현택 의협회장은 “원가의 50%수준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보험수가가 근 반백 년 동안 아직도 원가의 80% 언저리에 머무는 현실”이라며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료제도의 정상화를 위해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보다 건강보험 수가 개선이 더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수가협상에서도 의협과 공단은 타결에 실패한 바 있다. 의협은 의료기관 가운데 의원급 기관의 수가협상을 진행하는데, 지난해 협상이 부결로 종료되면서 2024년도 인상률은 공단이 제시한 1.6%가 적용됐다. 이는 2008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 최저 수치로, 지금까지 최저 인상률로 꼽혔던 2011년도 2%를 밑도는 수준이다.
물가와 임금 상승을 반영해 수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이다. 인건비, 집기 및 재료비, 시설 유지 비용 등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수가 인상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의원들이 경영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5년 의원 유형 수가 인상률은 2023년 2.1%, 2022년 3%, 2021년 2.4%, 2020년 2.9%, 2019년 2.7%로, 평균 2.62% 수준에서 결정됐다.
병협 역시 예년보다 협상 타결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2월부터 전공의들의 이탈과 휴진 및 진료 축소로 병원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협은 대학병원을 비롯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협상을 담당한다. 병협은 최근 5개월간 수련병원들에 누적된 경영난과 적자를 완화할 수 있는 수준의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과 달리, 병협은 지난해 수가협상에서도 인상률 1.9%로 최종 협상을 체결해 부결을 면했다. 그간 의대 증원과 관련된 갈등 상황에서도 의사와 정부 사이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강 대 강 대치를 피했던 만큼, 이번 수가협상에서도 비교적 원만한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5년간 병원 유형 수가 인상률은 2023년 1.6%, 2022년 1.4%, 2021년 1.6%, 2020년 2.9%, 2019년 1.7%로 의원 유형보다 낮다.
한편, 수가협상 기간 의사 단체와 정부의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대학병원 소속 교수들은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를 중심으로 ‘의료 및 의학교육 정책에 대한 불참 운동’을 예고하며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상황이다.
전의교협은 이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 불과하다”라며 “전문성을 무시하고 동일하게 반복될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전국의과대학 교수들은 거수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의협도 대학 총장들을 향해 의대 증원을 멈출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현재 증원이 결정된 전국 의대 32곳 가운데 20곳이 증원을 위한 학칙 개정을 마무리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날 전북대와 경상국립대 등은 교수평의회에서 개정안을 부결했다.
의협은 이날 “‘정치 총장’이 되는 우를 범하지 말고, 학생들의 미래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정상화를 위해 고뇌하신 교수님들의 부결 결정을 뒤집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오는 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입학전형위원회 심사가 끝나면 이후 대한민국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초대형 의료시스템 붕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