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女 10명꼴로 살해되는 국가서 괄목 성과”
여성 첫 에너지공학 박사·멕시코시티 시장 등 화려한 이력
사상 최대 규모 선거로도 기록…유혈사태 얼룩
‘마초(남성 우월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멕시코에서 200년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INE)는 2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인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소속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당선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INE는 무작위 표본 투표소에서 투표 동향을 예측하는 통계 방법인 신속 표본 집계 결과 셰인바움 후보가 득표율 58.3∼60.7%를 기록해 26.6∼28.6%를 얻은 우파 중심 야당연합 소치틀 갈베스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오차범위는 ±1.5%다. 시민운동당(MC) 소속 호르헤 알바레스 마이네즈 후보는 9.9~10.8%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이로써 셰인바움은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이후 멕시코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멕시코는 여성의 보편적 참정권을 보장하기까지 미국보다 33년이나 더 걸렸지만, 미국보다 빨리 최초 여성 지도자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타라 존 CNN 논설위원은 “매일 여성이 10명꼴로 살해되는 가부장적 문화와 높은 젠더 폭력 비율로 유명한 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셰인바움은 유대계 혈통의 과학자 집안 출신으로 그 자신도 멕시코국립자치대(UNAM·우남)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했다. 그의 정치적 후견인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이다. 셰인바움은 2000년 당시 멕시코시티 시장이었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그를 멕시코시티 환경부 장관에 앉히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2011년 좌파계열 정당 모레나를 창당할 때도 함께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을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로 여기는 시각도 있었다. 알베르토 라모스 골드만삭스 남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유권자의 눈에는 인기 있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셰인바움을 통해 대리 출마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셰인바움은 현 정부 정책인 온건한 이민 정책 추진,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 공기업 강화 등을 대부분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셰인바움이 ‘첫 여성’ 타이틀을 따낸 것은 이번 대선 한 번만이 아니다. ‘첫 여성’이라는 형용구는 그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소개 문구였다. 그는 우남에서 에너지 공학박사 과정에 입학해 학위를 받은 첫 여성이자, 2018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멕시코시티 시장이 됐다.
또 이번 선거는 멕시코 역사상 하루에 가장 많은 공직자를 선출한 최대 규모의 선거로도 기록된다. 이날 멕시코에서는 98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임기 6년의 상원의원과 3년의 하원의원, 멕시코시티 시장을 포함한 주지사, 구청장, 지방의원 등 약 2만 명의 공직자를 선출했다.
다만 이처럼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남았어야 할 이번 선거는 유혈이 낭자한 선거 운동과 전국적으로 계속되는 폭력사태로 인해 빛이 바랬다고 CNN은 짚었다. 멕시코 연구그룹 선거연구소는 지난해 6월 이후 최소 34명의 정치 후보자 또는 지원자가 살해당했고, 선거 관련 인물과 후보자를 상대로 한 수백 건의 공격이 있었다고 집계했다. 선거를 몇 시간 앞둔 전날 밤에도 시의원 후보 1명이 피살되는가 하면 선거 당일에는 각 투표소에서 총격, 도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