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회원 90.6% 투쟁지지…환자 생각 않는 쪽은 의사 아닌 정부”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집단 휴진을 결정했다. 대학병원, 중소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들 10명 중 9명은 ‘강력한 집단행동’을 지지하며, 7명은 이달 중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의료농단 저지 전국 의사 대표자 대회’를 열고 4~7일 전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집단행동 찬반 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11만1861명의 유효투표수 가운데 63.3%인 7만800여 명이 참여했고, 이들 중 90.6%인 6만4139명이 강경투쟁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6월 중 단체행동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73.5%에 해당하는 5만2015명으로 조사됐다.
결과 발표를 진행한 최안나 의협 대변인(총무이사)은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는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참석에는 주저하는 마음이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라며 “국민께 불편 끼쳐 죄송하지만, 이 모든 것은 국민이 누려야 할 의료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투표 결과에 따라 의협 전 회원은 18일 전면 휴진에 돌입하고, 같은 날 궐기대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의협의 전면 휴진은 ‘조건부’로, 정부가 의대 증원 및 전공의 대상 처분 등을 멈추면 단행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 대변인은 “정부가 오늘이라도 입장 변화를 보인다면 대규모 휴진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의협과 별개로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17일부터 전면 휴진을 예고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방재승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2기 비대위원장은 3~6일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비대위는 68.4%의 찬성으로 17일부터 전면 휴진을 단행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 비대위 역시 정부가 전공의에게 내린 행정처분 절차를 완전히 취소하는 등 태도 변화를 보이면 휴진을 하지 않겠다며 조건을 붙였다.
방재승 2기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가 잘못한 것이지 의사들 잘못이 아니다”라며 “환자를 생각하지 않는 집단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이고, 의료 붕괴를 막으려는 쪽은 의사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과 환자단체를 향해 “제발 의사들이 나와서 욕을 먹으면서도 투쟁하는 이유를 알아달라”라며 “이기적이고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투쟁을 선포하며 “망국적 정책을 저지하고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한 투쟁 전선 맨 앞에 서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임 회장은 “정부는 의료현장 붕괴로 인한 국민의 분노가 정부와 대통령을 향할 것이 두려워 누차 말을 바꾸고 각종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라며 “정부와 여당은 정권 유지와 총선 승리를 위해 고질적인 저수가와 왜곡된 의료체계 안에서 환자를 지킨 의사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공공의 적으로 악마화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대회에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대한개원의협의회,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등 다양한 직역의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참석했다.
당초 참석해 연대사를 할 예정이었던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 대변인은 “초대는 했지만, 대표 자격으로는 참석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오는 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집단행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그는 “내가 아닌 남이 나서주기를 바라고,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으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처럼 의료노예의 삶만 우리 앞에 남아 있을 뿐”이라며 “뭉치면 바꿀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나, 흩어지면 한순간의 물거품이 되는 중차대한 시점”이라고 호소했다.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의대 증원의 부작용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3000여 명을 교육하던 의대에 갑자기 2000명을 증원하는 몰지각한 정책은 교육 파탄, 전공의 수련 부실, 의료비 증가, 이공계 인력파탄 등 여러 부작용 초래할 것”이라며 “정부는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의대 증원이 대전제라는 논리에서는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필수·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료계 문제 해결과 수가 정상화가 선행돼야 하며 법적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라며 “국민건강 위협하는 현 정부의 의료농단 사태에 맞서 의료를 정상화하고 환자 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정부의 폭정에 강경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성혜영 의협 기획이사의 선창에 따라 ‘의대정원 졸속확대 의학교육 무너진다’, ‘의료공백 정부책임 의료농단 중단하라’, ‘필수의료 살리려면 적정수가 보장하라’, ‘국민건강 외면하는 관치의료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제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