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가요계를 장식한 키워드는 '분쟁'일 듯합니다. 소속사와 소속 연예인 간의 전속계약 분쟁부터 모기업과 하위 레이블 간의 '경영권 탈취' 의혹 관련 분쟁까지, 종류도, 규모도 다양하죠.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 간의 '경영권 탈취' 의혹 관련 갈등은 수개월째 진행 중입니다. 또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에는 그룹 엑소 유닛 첸백시(첸, 백현, 시우민)와 SM엔터테인먼트(SM)의 '템퍼링' 의혹이 다시금 떠올랐죠.
이 과정에선 수십 개의 공식 입장문이 전해지고 '긴급 기자회견'이 개최되는 등 혼란을 빚었습니다. 메시지 내역과 녹취록 등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는데요. 쌓여만 가는 파문에 대중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 간의 갈등은 두 달여째 진행 중입니다.
이들의 갈등은 4월 22일 하이브가 민 대표와 어도어 임원진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면서 드러났습니다. 하이브는 어도어 일부 경영진이 올 초부터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해외 투자자문사,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털(VC) 관계자 등에게 매각 구조를 검토받는 등 경영권 탈취를 위한 계획을 실행했다고 봤는데요. 다음 날엔 민 대표를 포함한 A 부대표의 배임 증거를 확보했다며 이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발했죠. 또 어도어가 이사회 소집 요구에 불응할 것을 대비해 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도 신청했습니다.
이에 민 대표는 4월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하이브 측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습니다. 하이브의 또 다른 하위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그룹 아일릿이 어도어 소속 뉴진스를 카피했다는 문제를 제기하자, 하이브 측이 민 대표의 '경영권 탈취 시도'를 주장하며 그를 해임하려 한다는 주장도 내놨죠. 이후 민 대표 측은 법원에 하이브를 상대로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의 갈등은 법원이 지난달 30일 민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습니다. 법원은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하이브를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주식을 매도하게 함으로써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방법을 모색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하이브의 주장과 자료만으로 민 대표에게 해임 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배신은 될 수 있지만, 배임은 아니라는 거죠.
법원 결정에 따라 하이브는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에서 민 대표의 해임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었는데요. 다만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한 만큼, 민 대표 측 사내이사인 신모 부대표와 김모 이사를 해임, 새 사내이사 후보로 내정했던 김주영 최고인사책임자(CHRO), 이재상 최고전략책임자(CSO), 이경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선임했습니다.
대표직을 지킨 민 대표는 지난달 31일 2차 기자회견을 열고 한결 편안한 얼굴로 등장했습니다. 1차 기자회견에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개저X', '맞다이로 들어와' 같은 비속어나 거친 말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그는 하이브를 향해 더 이상의 분쟁은 감정 소모에 불과하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습니다. "누구를 위한 분쟁인지 모르겠고, 무얼 얻기 위한 분쟁인지도 모르겠다"며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자는 뜻도 전했죠.
민 대표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하이브는 침묵 중입니다. 민 대표가 꾸준히 문제 삼고 있는 주주간계약 경업금지 조항의 문제점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데다가, 지난해 12월 이미 해당 조항에 대한 수정 의사를 전달했던 바 있다고 주장해 온 만큼 갈등이 극에 달한 지금으로선 하이브가 민 대표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게다가 하이브는 새로운 이사진을 필두로 어도어의 이사회를 개최해 민 대표의 해임을 다시 추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이브가 이번 사태의 핵심을 민 대표의 경영권 찬탈 모의 등 배임 행위에 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법정 분쟁의 빌미는 남아 있는 셈입니다.
다만 하이브가 여론 등을 의식해 새 국면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민 대표의 첫 번째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하이브와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는데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민 대표와 타협해 사태 수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죠. 이 경우 양측 모두 납득할 만한 수준의 타협점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첸백시와 SM 간 갈등도 재점화됐습니다. 엑소(EXO)의 궂은 역사(?)에 팬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2012년 12인조로 데뷔한 엑소는 중국인 멤버 크리스, 루한 등이 SM과의 분쟁 후 팀을 탈퇴한 이력이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첸백시가 SM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는데, SM은 그 과정에서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죠. 당시 차가원 원헌드레드 회장과 공동 투자로 원헌드레드를 설립한 프로듀서 겸 래퍼 MC몽이 외부세력으로 지목됐습니다.
당시 첸백시는 SM과 전속계약은 유지하되, 독자적인 개인 활동을 하기로 하면서 갈등을 봉합한 바 있습니다. 백현은 INB100을 설립하고 엑소 활동은 SM에서 하되, 첸백시 활동과 개인 활동은 INB100에서 한다고 밝혔죠. 그러다 INB100이 원헌드레드에 자회사로 편입됐고, '템퍼링' 의혹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템퍼링은 이미 다른 회사와 전속계약 중인 아티스트에 사전 접촉한 것을 말하는데요. 1년여 만에 양측은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면서 더 첨예하게 맞붙게 됐죠.
첸백시 측은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SM이 약속한 5.5%의 음반·음원 유통수수료율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개인 매출액의 10%를 요구한다며 부당함을 호소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첸백시가 아닌 차가원 회장과 김동준 INB100 대표, 이재학 변호사가 참석했는데요. 차 회장은 "백현과 나, MC몽은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관계"라며 "MC몽은 연예계 선배로서, 나는 지인으로서 조언했을 뿐"이라고 템퍼링 의혹엔 선을 그었습니다.
이에 SM은 즉각 공식 입장을 내고 "모든 사건의 본질은 당사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한 MC몽, 차가원 측의 부당한 템퍼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며 "사익 추구를 위해 전속계약에 이어 합의서까지 무효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첸백시의 행동을 용인하지 않고 책임을 묻겠다"고 못박았습니다.
이어 첸백시가 부당하다고 주장한 '개인 법인 매출 10% 로열티'에 대해선 전속계약 분쟁을 벌인 엑소 전 중국 멤버들과 법원 중재에 따라 실행됐던 기준이라고 설명했는데요. INB100 측이 주장하는 유통 수수료율 5.5% 문제와 관련해서는 "첸백시와의 분쟁 과정에서 첸백시 측에게 유통사와 협상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언급한 부분"이라며 "애당초 다른 유통사의 유통 수수료율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실제로 합의서 체결 과정에서 첸백시 측이 유통 수수료율 관련 내용을 합의 조건으로 넣어달라고 했지만, 결정 권한이 없어 포함될 수 없다고 설명하고 해당 규정을 삭제했다"고 설명했죠.
이어 "첸백시가 원하는 유통 수수료율 조정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초부터 SM에서 준비했던 백현 솔로앨범을 개인법인에서 발매할 수 있게 했다. 백현이 일방적으로 취소한 일본 공연의 위약금도 SM이 지불했다"며 "첸백시가 특별히 손해를 입은 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지난해 봉합되는 듯했던 전속계약 분쟁에 이어 분쟁 후 합의서에 대한 갈등이 재차 벌어지면서 갈등을 봉합할 단계를 지났다는 건데요. 일각에서는 엑소 완전체 활동이 어렵다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첸백시 측은 "긴급 기자회견은 완전체 활동의 지속과는 관계가 없으며, 이후에도 첸백시는 SM과 엑소 완전체 활동을 성실히 할 것을 다시 한번 팬분들께 약속드린다"고 전했죠.
그러나 팬들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첸백시의 행보가 엑소의 공식 구호인 '위 아 원'(We Are One)과는 영 다르다는 건데요. 엑소 리더 수호는 14일 MBN 주말드라마 '세자가 사라졌다' 종영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왕세자 '이건' 역으로 열연한 수호는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마친 소회와 비하인드 등을 밝힐 예정이었죠. 그러나 첸백시 측이 돌연 SM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엑소 리더'인 수호의 입장에도 관심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사실 수호는 지난해 첸백시와 SM 간 갈등이 뮤지컬 '모차르트!' 활동 시기와 겹치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한 바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 상반기 가요계에서는 각종 분쟁이 불거졌습니다. 전 소속사 스파이어엔터테인먼트(스파이어) 대표인 강모 씨로부터 폭언·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다며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오메가엑스는 지난해 1월 승소한 후 현 소속사 아이피큐에 둥지를 틀었는데요. 아이피큐는 스파이어와 전속계약 해지 및 지식재산권(IP) 양도에 대한 3자 합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스파이어 측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 3자 합의가 구체적 내용에 대한 논의 없이 강압적으로 진행됐으며, 전속계약 해지를 합의하는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았기에 오메가엑스와의 전속계약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이에 아이피큐는 본안 소송 진행이 필요하다고 판단, 즉각 대한상사중재원을 통해 전속계약 해지 본안 소송을 진행했죠. 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소년 판타지-방과후 설렘 시즌2' 출신 유준원과 제작사 펑키스튜디오 간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펑키스튜디오가 유준원을 상대로 제기한 30억 원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은 27일 열릴 예정이죠.
앞서 유준원은 ‘소년판타지-방과후 설렘 시즌2’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계약 조항이 불합리하다며 펑키스튜디오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바 있습니다. 재판부는 펑키스튜디오가 제시한 계약 내용이 표준전속계약서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기각했는데요. 이후 펑키스튜디오는 유준원의 이탈로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판타지 보이즈가 홍보 전략, 활동 등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30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습니다.
가수 강다니엘은 지난달 법률대리인을 통해 본인이 대표이사를 맡았던 커넥트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 A 씨를 사문서위조·횡령·배임·정보통신망 침해 및 컴퓨터 등 사용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고 알렸습니다. A 씨가 대표이사 명의를 도용해 몰래 100억 원대 선급 유통 계약을 체결하고, 적법한 절차 없이 소속사 계좌에서 최소 20억 원 이상 돈을 인출했으며, 무기명 법인카드로 수천만 원 이상 사용 후 회계장부에 허위 기재하고, 강다니엘 명의 은행 계좌에서도 17억 원 넘는 돈을 몰래 인출했다는 주장이죠.
올여름 여러 아티스트가 컴백을 예고했지만, 각종 소송전도 전해지면서 가요계에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잡음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듯한데요. '긴급 기자회견'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과 함께, '다음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누구냐'는 궁금증도 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