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정확한 실태 파악 어려워
항목별 가격, 이용량 등 전수조사
의료개혁 과제 편입됐지만…보험권은 정부·의료계 눈치만
‘도수 치료, 마늘·백옥주사, 백내장 수술(다초점렌즈 삽입술), 무릎주사(골수줄기세포 주사)….’
실손의료보험의 대표적인 비급여 과잉 진료 항목들이다. 실손보험이 ‘적자구멍’으로 전락한 요인은 비급여 항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차례 대대적인 손질에도 실손보험의 비급여 보장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과잉 청구하는 일부 의료기관과 이를 이용하는 일부 소비자로 인해 보험료는 줄줄 샜고 피해는 선량한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안게 됐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보험개혁회의 등에서 실손보험 비급여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모럴헤저드’ 등 의료계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24일 금융당국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업계가 지급한 실손 비급여 보험금은 처음으로 8조 원을 넘겼다. 2021년 7조 8742억 원에서 2022년 7조 8587억 원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8조 126억 원으로 증가 전환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백내장 대법원 판결 등으로 인해 다소 감소했던 비급여 지급보험금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백내장에 대한 다초점렌즈 삽입술이 과잉진료로 문제시되며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급격히 상승했지만 2022년 대법원 판결에서 보험사가 승소한 뒤 보험금 지급이 안정화된 바 있다.
지난해 가장 많이 지급된 항목은 비급여 주사료로 전체의 28.9%를 차지했다. 이어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질환 치료 28.6% △질병 치료 목적의 교정치료 3.1% △재판매 가능 치료재료 2.0% △하지정맥류 1.6%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근엔 무릎 줄기세포 주사 등 새로운 비급여 주사 치료가 실손보험의 새로운 ‘적자 주범’으로 떠올랐다.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의 올해 1~5월 비급여치료에 대한 실손보험금은 총액의 57.4%를 차지하는 2조2058억 원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비급여주사 치료가 유행하면서 눈에 띄게 불어났다”고 했다.
비급여 진료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한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비급여 진료비의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려워 적절한 관리대책 수립에 한계가 있는 데다, 비급여 항목과 금액 공개에 대한 의료공급자의 반감과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정부도 비급여 치료의 문제를 인식하고 보고제도 확대와 관리 체계 구축을 의료개혁 4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의원급을 포함한 전국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별 가격과 이용량, 진료 질환 등 비급여 진료 내역을 4월부터 이달까지 보고하도록 했다. 보고항목도 594개에서 1068개로 늘었다. 이용빈도와 진료비 규모 등을 고려해 △행위·치료재료 △약제 △영양주사 △예방접종 △교정술 △첩약 등이 포함됐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금융위원회와 보험업계 등과 함께 실손보험 비급여 혜택 축소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험업계는 최근 정부에 비급여 혜택 축소 방안으로 통원 1회 보장 한도 제한 방안 등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액의 비급여 치료를 한 번에 여러 건 받는 경우가 많아 실손 보험금이 누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손보험금을 많이 받아가는 상위 10% 가입자에 대해선 다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70~80% 수준인 실손보험 보장 수준은 낮추고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결국 또 사라질 논의라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보장 한도가 제한되면 당연히 실손 손해율 관리에 유리하겠지만, 의료계가 협조하겠냐는 의문이 든다”며 “보험업계에서는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저 정치권과 의료계 간 소통이 잘 마무리되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