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회사 공금 횡령하고 산으로 도주하는 자들인 줄 알겠어.” 농담도 잠시, 곧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자 미끄러지고 헛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손, 두 발을 이용해서 나뭇가지를 부여잡으며 오르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온몸을 때리기 시작하자 여름밤 모기의 습격처럼 성가시고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하나, 우리의 불평에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비는 점점 더 거세어졌고, 산을 거의 내려왔을 무렵에는 전신이 비에 푹 젖어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해졌다. ‘물아일체란 바로 이런 거구나!’ 비와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내는 여름비는 샤워기의 물줄기와 같았다. 아니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우린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된 느낌으로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기 어린 청춘이었던 것이다.
“원장님, 경찰에서 환자분을 모시고 왔어요.” 몇 달 전 퇴원 후, 소식이 끊겼던 환자였다. 약복용을 중지한 후 증상이 재발하여 길거리에서 옷을 다 벗고 소리를 지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다시 내원한 것이다.
“왜 옷을 벗었어요?” “우주에 내 몸을 맡기고, 하나가 되려고요. 그 기분 알아요?” “알죠. 정말 날아갈 듯한 느낌이죠.” “역시 원장님은 내 맘을 이해해 주는군요.”
환자의 등을 토닥여주고, 병실문을 나섰다. 문득 창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파란 하늘이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회색빛 진료실로 다시 들어가다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정말 끝내주었겠는데….”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