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속세를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꼽았다. 최 부총리는 어제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서 “제도 자체가 20년 이상 개편되지 않아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기본 인식이 있다”고 했다. “7월 말 세법개정안을 마련할 때 담으려 한다”고도 했다.
세제 개편은 국가적 과제다. 특히 경제사령탑이 상속세 개편의 시급성을 언급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최대주주할증과세(20%)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로 세계 최악이다. 약탈적 세제의 부담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 비율로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6개 경제단체가 다음 달부터 배포할 ‘상속·증여세 개편, 백년기업 키우는 열쇠’ 자료집에 따르면 GDP 대비 한국의 상속·증여세수 비율은 0.68%로 프랑스(0.7%)에 이어 OECD 2위다. OECD 평균(0.15%)의 4.5배다.
우리나라가 2000년 이후 24년째 상속세 최고세율을 방치하는 동안 호주, 캐나다 등 OECD 15개국은 제도 자체를 아예 폐지했다. 상속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걷는 자본이득세 등이 대안으로 선택됐다. 기업도, 개인도 과중한 세금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는 고질적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해결한 획기적 접근법이다. 이중과세 논란도 해소했다. 이쪽이 한결 타당하고 유익하다는 국가적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우리도 공론화가 필요하다. 폐지가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세율 합리화는 서둘러야 한다.
20년 넘게 그대로인 과세표준구간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간의 경제 성장, 자산가치·물가 변화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개최한 ‘밸류업 세제 지원 공청회’에서는 2000년부터 2023년까지 명목 GDP가 255% 늘어난 점을 반영해 과표구간을 각 3배씩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말 한국조세연구포럼은 학술지를 통해 최고세율 적용구간 30억 원을 2021년 가치로 추정하면 48억6000만 원으로 확장되는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국가적 과제에 ‘부자 감세’ 프레임을 들이대면 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경계할 일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대상 피상속인(사망자)은 1만9944명으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결정세액은 12조3000억 원으로 10년 새 9배 증가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 원 수준이다. 1997년부터 변한 적 없는 공제한도(10억 원)를 웃돈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도 과세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상속·증여 세제는 더 이상 부유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제 개편을 좌우할 권력을 가진 정치권은 선동적 프레임을 치우고 실사구시를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최근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반도체 기업 지원을 대기업 특혜 시각에서 바라봐선 안 된다”고 했다. 상속세도 마찬가지다. 특혜 시각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발상의 대전환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