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편성권도 제동 방침
전력계획·R&D 국회 ‘동의’ 의무화
민생회복지원금부터 뇌관 예상
尹 대통령, 거부권 행사할 수도
더불어민주당이 행정부 권한인 대통령령(시행령)과 예산 편성 및 집행권을 넘보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시행령이나 예산을 만들 때와 수정할 때 사실상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 게 핵심인데, 국회 170석 의석을 가진 민주당 협조 없이는 법률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령도 임의로 바꿀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 통제권까지 넘보자 국민의힘은 “(삼권분립이라는)헌법의 기본 가치마저 무너뜨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을 입법예고하기 전에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제출할 것을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천준호 의원은 국회에서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이 법률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시행령 효력이 자동으로 상실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현행법은 국회가 대통령령 등의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게 돼 있지만, 해당 법안들은 국회가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대통령령을 사용할 수 있는 법률은 행정부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법률에 한 해 가능하다(헌법 제75조, 95조)는 점을 미루어볼 때 헌법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27일 논평에서 “모든 국가 체계 위에 자신들이 군림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헌정 파괴 행위”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또 정부에서 추진하는 전력계획 수정과 연구개발(R&D) 예산조정까지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만들거나 수정할 경우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받아 기본계획을 확정하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 R&D사업 예산을 재조정하면 내용과 사유를 국회의 동의를 받게 하는 ‘과학기술법 개정안’을 냈다. 국회가 정부 예산을 심의해 수정하는 게 아닌 수립 단계에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당시에도 맹성규 의원의 대표 발의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일반 상임위원회로 전환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낸 바 있다. 해당 법안에는 기재부가 국회에 재정 총량과 지출 한도를 보고하게 하고, 예결위 심사 결과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논의하도록 해 사실상 정부의 예산 편성 단계부터 국회가 관여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밖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상임위별로 예산권을 통제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민주당은 “총선 민심은 윤석열 정권 2년 실정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의 이 같은 행보에 “22대 국회에서 더 정교하고 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전 국민에 25~35만 원 지급을 위해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직접 발의한 ‘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 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해당 법안은 행정 집행 대상과 시점, 규모, 방법 등을 명시한 ‘처분적 법률’의 형태로 정부 예산권 침해 법안으로 꼽힌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출한 해당 법안 ‘비용추계서’에도 “소득 수준별 지급금액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민생위기특별조치법을 7월 2일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한 뒤 속전속결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여당으로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유일한 카드”라고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은 국회로 돌아와 재의에 부쳐지는데, 재의결 때는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모든 의원이 출석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민주당 의석(170석)보다 30석 많은 200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여야 관계는 더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